너무도 쉽게 화내는 것은 내 성격의 최대결함이다. 다른 성질들은 그럭저럭 어떻게 해보겠는데분노의 감정에서만은 늘 속수무책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를 잃거나 되로 모은 공덕을말로 흩뿌려버리거나, 불의의 횡액에 휘말리거나 한다.
논어에서 공자는 어질고 잘 참는 것은 군자의 덕이고 어질지 못하고 참지 못하는 것은 소인의특성 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나는 영락없이 소인배인 셈이다.
◆화나는 것은 살아있다는 징표
하지만 정작 내 고민은 쉽사리 분노하는 소인배 에 머문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분노하지 않는 소시민 에 머문다는 것이다. 화 낸다는 것만으로 일을 다 그르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싱그러운 징표일 수 있다. 비록 좌충우돌하며 헤매일 때조차 거기에는 무언가 이래서는 안된다 는 강한 거부와 저항의 몸짓이 스며있으니 말이다. 확실히, 위대한 일들은 숭배와 찬양의 정열만큼이나 또한 저항과 분노의 정서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법이다.
희랍의 가장 위대한 고전 일리어드 가 다루고 있는 것도 이 오래된 주제다. 그래서 작자 호머는개권 첫 장을 오 여신이여 희랍연합군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을 가져다준, 펠레우스의 아들아킬레스의 분노를 노래하소서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트로이 군에 맞선 희랍군의영웅 아킬레스는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여자 문제로 다투어 불화한다. 그래서 그는 트로이군의 반격으로 희랍군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려도 자기 진중에 틀어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출전을 그도록 간청하던 친구 페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빌려입고 나섰다가 싸움 중에전사하고 그의 갑옷마저 모독되고 탈취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침내 복수의 칼을 빼어든다.바람의 아들이며 빛의 전사인 아킬레스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 끝에 친구의 원수를 갚는다.
◆분노할 것엔 분노해야
결국 저 마지막 전장에서 숱한 생명들이 꽃잎지듯 허망하게 사라져가버린 것은 어처구니 없게도한 인간의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 분노 때문이었다.
이 비극을 보면서 더러 이러한 아킬레스의 경망스러움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만일 이 세상이 사랑만하고 분노는 할 줄 모르는 인간들,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인격자들로만채워져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즐거움이 따분해지고 쾌락은 지루해지면서 이제 행복조차 지겹고권태로운 고통으로 떨어져버리지 않겠는가. 행복이 고통스러워지는 세계, 이것이야말로 도망칠 수없는 완벽하게 불행한 세계일 것이다.
어느 작가는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라며 자신의 소시민적 분노를 자책했으나 우리의생각으로 이것은 잘못 겨눈 과녁처럼 보인다. 작은 일도 능히 세계 하나를 깨트릴 분노와 만날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큰일에만 분노해야 소시민에서 벗어나 영웅, 군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분노하는 일의 크고 작음을 어찌 그 과녁의 바름과 빗나감에 비하겠는가. 그러니 문제는 왜 나는 쉽게 분노하는가 가 아니라 우리는 분노해야할 것에 분노하고 있는가 다. 우리 삶이 이토록척박하고 어수선해진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솟구치는 분노 때문이 아니라 분노해야할 것에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 때문은 아닐까.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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