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태양… 푸른 바다… 고대 유적…" 터키의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하는 에게해(海)연안 지역은 자연경관이 가히 환상적이었다.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올리브밭과 험준한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들쭉날쭉한 리아스식 해안이 끝없이 이어져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냈다. 강렬한 지중해의 태양볕 아래에는 무화과, 버찌, 복숭아, 자두,수박같은 향기로운 과일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지난 5월 아시아나 항공의 이스탄불 취항으로 이곳엔 한국관광객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바다 건너 마주보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영향으로 태고적 신화와 전설이 풍부하고, 수많은 종족과 문명이 스쳐간 탓에 옛시대의 문화유적과 유물이 지천으로 묻혀 있는 에게해 연안.특히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한 반경 1백㎞의 반원형 지역은 국내 가톨릭과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지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국민의 90% 이상이 회교도로 한가로운 농촌마을 어귀마다 어김없이 모스크가 서있었다. 그러나과거에는 기독교를 그리스. 로마로 전파한 중간기착지였고,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보편종교의 싹을 키운 요람이었다.
이 곳에는 사도 바오로와 베드로의 발자취가 서려 있고, 성모마리아가 만년을 보내고 승천한 것으로 알려진 집, 사도 요한 및 루가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 에페소를 비롯 요한 묵시록(默示錄)에나오는 아시아의 7대교회 의 유적들이 발굴, 보존되고 있다.
최대의 도시는 이즈미르. 성서에 나오는 이름으로는 스미르나 이며,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에다음가는 터키 제3의 도시이자 제2의 무역항이다.
흰 돛을 편 요트가 유유히 떠다니는 에게해의 길고 좁은 만(灣) 위쪽에 위치, 앞으로는 푸른 바다를 굽어보고 뒤로는 완만한 경사의 구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의영향으로 겨우내 비가 내리고, 여름에는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매년 6~7월에는 국제 아트페스티벌, 8~9월에는 국제페어가 개최되는 국제도시다.
겉보기에는 야자수와 키큰 소철이 가로등처럼 늘어선 거리에 황토를 구워서 만든 붉은 기와지붕,회칠을 한 외벽의 현대식 건물들이 다소 추레한 모습으로 들어차 있는 이슬람 도시. 그러나 거리엔 차도르를 쓴 여인보다는 유럽식 평상복 차림의 여성이 더 많다. 터키인들의 자유로운 종교관을 엿보게 하는 광경이다.
스미르나 는 5천여년 전부터 인간이 정착해 살던 곳으로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발전을 거듭하다가 기원전 627년 리디아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그 후 기원전 3세기경에 새롭게 건설돼 트로이전쟁사(史)로 유명한 트로이와 함께 서부 소아시아지역의 선진도시로 성장했다가 히타이트 제국에 점령당했고,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는 등 곡절많은 역사를 가지고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를 쓴 시인 호머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즈미르 중심가 코나크 거리에 있는 고고학박물관에는 포세이돈과 고대의 테메테르 동상 등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 전시돼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민속 박물관에는 베르가마 지방의 괴르테스카펫, 터키 전통의상, 낙타굴레 등 민속예술품이 풍성하게 소장돼 있었다.
케메칼티 시장을 메운 상인들에게서는 이즈미르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물건값의 반을 에누리해도 결코 화를 내지 않는 유연한 상술의 소유자들이다. 이곳에는 이즈미르의 특산품인예술품과 보석, 다양한 의류, 각종 지중해성 과일, 무화과 열매 말린것, 건포도 등을 살 수 있다.터키 이즈미르
가볼만한 곳
◇에페소=에게해 연안에서 빠트릴 수 없는 곳은 고대 에페소 유적지. 에페소는 로마시대에 사도 요한이 거주하며 복음서를 쓴 곳이지만, 19세기 후반에 발굴돼 햇빛을 보게 됐다.유적으로 규모면에서 봄베이를 능가하며,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요한의 무덤자리에 세워졌다는사도요한 교회의 유적이 있다. 현재 유럽에서 온 발굴팀에 의해 도시 전체에 대한 매우 느린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스미르나=현대 이름은 이즈미르. 기원전 2~3세기에 크게 번창해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으며, 초대교회를 핍박한 내용이 묵시록 유대인들의 훼방 부분에 기록돼 있다. 순교자 폴리갑 주교를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폴리갑교회가 현재까지 외국인들을 위한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라오디게아=현대 이름은 라오디키아. 온천 휴양지로 유명한 파묵칼레 인근에 위치했던 상업도시. 한적한 농촌마을 뒷산에 로마식 야외운동장과 원형극장터, 초대교회의 유적 등이 남아있다.◇필라델피아=기원전 2세기경에 세워진 도시로 사르디스, 베르가모, 라오디게아 사이에 위치한 교통요지. 알라세히르라는 마을 한편에 비잔틴 시대에 세운 교회터에 남은 3개의 큰 기둥과 벽화가비바람에 마모돼 가고 있다.
◇사르디스=기원전 3세기경 세워진 도시로 로마시대의 지역 중심지. 지금은 사르트라고 불리는마을 뒷산에 기원전 335년 알렉산더 대왕때 재건된 가로 1백m, 세로 50m 규모의 그리스 신전과신전 후면에 세워졌던 초대 기독교회 건물의 유적이 발굴됐다.
◇티아디라=기원전 300년경 베르가모와 사르디스를 잇는 교통요지에 세워져 기원 1세기 경에는이지역 산업중심지로 발전했다. 아키사르라는 소도시 중심가에 초대교회의 기둥들이 부서진 상태로 방치돼 있다.
◇베르가모=선사시대부터 도시가 발달된 곳으로 기원전 133년 이후 로마의 통치를 받을 때는 속주 아시아의 수도가 됐으나, 그후 세력이 커진 에페소로 수도가 옮겨간다. 지금은 인구1~2만 규모의 소도시 베르가모 교외에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세계최초의 정신병원 아스크레피움 과 아크로폴리스, 세라피스신전 자리에 세워진 비잔틴 시대의 교회유적이 남아있다.
◇성모 마리아의 집=예수가 십자가에 못박인 후 이스라엘 땅을 떠난 성모 마리아가 만년에 기거했던 곳으로 알려졌으며, 에페소 교외 산상에 있다.
요한 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며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돌봐줄 것을 부탁,요한은 마리아와 함께 에페소로 오게 되며 마리아를 위해 산위에 집을 지어주었다.그후 1878년 평생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캐더린이라는 독일 수녀가 꿈속에서계시를 받은 내용으로 성모 마리아의 생애 라는 책을 펴냈는 데 이 책 속에 마리아의 집 위치가상세히 기록됐고, 1891년 나자렛 신부가 조직한 탐사반에 의해 현장이 확인됐다는 일화가 있다.◇성모마리아의 교회=에페소 시가지에 세워진 교회 유적으로 기원 431년 제3차 가톨릭공의회가열린 장소. 성모마리아가 에페소에 살다가 묻혔다는 사실도 이 공의회기록을 통해 확인됐다.〈글 呂七會기자.사진 李埰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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