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해외현지르포-오키나와 어제와 오늘

"국제무역·정보의 중심지로 도약"

오키나와가 변하고 있다. 6백년전 조선, 중국, 일본, 동남아를 연결하던 경제적, 인적 교류의 해상중심지였던 류큐(琉球) 왕국이 오늘날의 오키나와. 국제무역의 중심지가 되기위해 발돋움하고 있는 오키나와는 일본의 침략을 받아 야마토(大和) 민족에 편입됐고 2차대전 종반의 격전지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참화를 겪기도 했다. 지금은 미군주둔의 피해를 호소하며 미군철수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변화속의 오키나와를 찾아 한국문화의 흔적, 자유무역지대 개설노력, 태평양전쟁의 상흔, 미군철수문제, 민속등을 생생한 현지 르포로 소개한다.

오키나와인은 야마토(大和, 일본) 민족이 아니라며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다시대두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의 하와이로도 불리는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최후의 격전지였던 관계로 해마다 7월이면 전쟁희생자 위령행사가 각지에서 열려 엄숙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또 이와는 대조적으로 국제 무역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열기도 느껴진다.

지난 95년9월 미군병사 3명의 초등학교 여학생 집단성폭행 사건으로 야기된 오키나와주민의 미군철수시위는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그로부터 1년9개월. 지금 오키나와는 동아시아 무역과 정보의 새로운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주변정세의 엄청난 변화속에 변신의 몸부림을 치고있다.

오키나와 현청에서 만난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지사는 중앙정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제주도를 찾고 동남아시아 각국과의 유대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반환뒤 동아시아의 정보 중심지를 꿈꾼다 고 밝혔다. 이미 자유무역지대에는 한국의 김태원씨(57)가 컴퓨터생산업체를가동중에 있고 대만은 투자에 가장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류큐대학의 한교수는 오키나와 현청이 국제도시구상의 실현을 위해 내놓은 자유무역지대 즉 1국2제도 의 요구를 중앙정부가 언젠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오키나와가 제2의 홍콩을 목표로 기치를 내건 1국2제도 는 결국 독립으로 연결될것이라는 주장들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키나와의 한맺힌 역사를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17세기초까지 조선, 중국, 동남아를 연결하는 무역의 중심지로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중국에 조공을 바쳐오던 류쿠왕국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을 위한 부역명령을 따르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츠마번의 침략을 받고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후 2차대전시에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20만명중 가장 많은 희생자가 현지출신이었으며다시 1972년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는다. 또 일본에 반환된뒤 현재까지는 미군주둔에 따른 각종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96세로 과거 오키나와에서 자치단체 시장을 역임했던 한 오키나와인은 오키나와 독립선언이라는 저서를 통해 야마토는 돌아가야할 조국이 아니다. 오키나와는 미군기지를 거부하고 야마토와 분리해 평화로운 류큐왕국으로 되돌아가는 그것이 독립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오키나와현은 48개의 유인도를 포함, 1백60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으며 1백28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지도를 보면 초승달모양의 오키나와 본섬을 중심으로 모든 섬들이 태평양을 향한 징검다리 섬 으로 불리울 만큼 가늘고 긴 벨트형을 형성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도쿄에서는 비행기로2시간30분이 걸리나 중국 상해서는 1시간30분, 대만서는 1시간의 거리이며 동남아제국과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예부터 오키나와에는 다양한 언어가 사용됐고 다양한 사고방식과 문화가 혼합돼특이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또 14세기 대교역시대에 구축한 예능, 염직, 도자기등의 예술적유산도 간직하고 있다.

조선과도 활발한 교류가 있어 언어, 물자등 많은 한국문화가 남아있다.

또한 오키나와는 일본서는 유일한 아열대 해양성기후에 속해 에메랄드 그린의 바다와 각종 산호초, 아름다운 해변등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받고있다.

그러나 2차대전시 오키나와는 일본군의 국내 최전선기지였기 때문에 모든 주민들이 격렬한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 오키나와전투의 희생자는 약 20만명에 이르고 있다.

오키나와전쟁의 최후격전지였던 이토만시의 마부니(魔文仁)언덕. 태평양의 거친 파도가 만든 단애위 언덕에는 오키나와전투에서 생명을 잃은 20만명의 이름을 새긴 초석들이 세워져 있다.당시 미군의 상륙작전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일본군사령관등이 집단자결했던 일대는 외국관광객들이 찾아와 기념촬영을 하는 명소가 됐다.

한국인희생자는 약 8천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신원이 확인돼 초석에 이름이 새겨진 한국인은 현재 2백22명에 지나지 않는다.

〈도쿄.朴淳國특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