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생자 괌출발 표정

하늘이 뚫린 듯 억수같이 내렸던 '그날'의 굵은장대비가 이날도 간간이 쏟아졌다.12일 오후 11시10분(한국시간) 괌 원 팻 국제공항 화물청사.

지난 6일 새벽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괌 니미츠힐에 추락한 KAL 801편 탑승 희생자들의 시신10구가 사고발생 8일만인 13일 오전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휴양지 괌 땅을 채 밟아 보기도 전에 불귀의 혼이돼 다시 귀국해야 하는 서러운 사람들.

이들의 시신을 실은 미해군의 대형 컨테이너가 화물청사에 도착하자 유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불빛에 번들거리는 알루미늄 관이 10개가 아닌 12개였기 때문.

유가족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당초 이날까지 신원이 확인된 뒤 송환절차가 끝난 12구의 시신 가운데 2구는 현지 메모리얼병원에 임시 보관될 예정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시신 2구가 화물창고에 나타난 것.

이때 알루미늄 관 겉면에 씌어진 시신의 명단을 확인하던 유가족 한명이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시신이 바뀌었다"

분명히 이날 함께 떠나기로 돼있던 시신 대신 엉뚱한 시신이 끼여있었다.

웅성거림은 곧 분노로 변했고 여기저기서 "속았다", "시신을 싣지 못하도록 막아", "다른 유가족들에게 알려"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출국하는 유가족들을 배웅하러 나왔던 정홍섭대책위원장 등 유가족 대표와 숙소에서 쉬고 있던유가족 30여명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대한항공측에서 심이택부사장 등 임원진도 현장에 급히 뛰어나와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유가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심부사장은 출발 예정시각을 1시간 연기한 뒤 이날 송환되지 않기로 했던 2구의시신을 메모리얼병원으로 옮기고 뒤바뀐 시신을 원상 복구시키겠다고 달랬지만 유가족들의 분을 삭힐수는 없었다.

이들은 대신 '미국측은 시신운구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시신을 공개하라', '괌및 한국정부, 대한항공측은 사죄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운동가요 '아침이슬'도 불렀다.한편 같은 시각 공항 청사 1층에서는 침통한 표정의 유가족 20여명이 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신혼여행 잘 다녀오겠다며, 효도여행 보내줘서 고맙다며 공항에서 손을 흔들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사고 소식을 듣고 경황없이 공항에 도착하면서, 사고 현장을 방문해서, 또 합동분향소에서 울고또 울었지만 또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먼저 가서 아버님 장사를 지낼테니 너는 남아서 나머지 가족의 시신을 모셔와라"여럿의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도 한 구의 시신만 찾아가는 한 유가족은 남아있는 동생에게 뒤를부탁하며 흐느꼈다.

제삿날은 같은데 장례는 따로 치러야 하는 서러움이 배어있었다.

오전 2시30분.

시신과 유가족을 태운 KE 801편이 예정보다 한시간 가량 늦게 도망치듯 검은 먹구름이 가득한상공으로 치솟았고 그 아래 화물청사 앞에서는 아직도 유가족과 대한항공 직원들이 '비행기를 띄우네, 마네'하며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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