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도 작가도 잊었지만, 어려서 읽은 동화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옛날에 한 왕이 살았다. 왕은부하의 아내를 사랑하게 되었다. 왕은 부하를 국경으로 쫓아보내고 부하의 아내에게 사랑을 호소했다. 부하의 아내는 대답했다.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덕목이 무엇인지 알아 오시면 전하의 사랑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왕은 음유시인에 섞여 여러 해 전국을 떠돈 끝에 마침내 한 음유시인으로부터 사람에게 귀중한 덕목이 부끄러움이라는 사실을 듣는다. 의기양양하게 돌아온 왕은 부하의아내에게 말한다. "이제 알아냈으니 내 사랑을 받아 달라" 부하의 아내는 왕 앞에 무릎을 끓는다."왕이시여, 부끄러움이 가장 귀중한 덕목인 것을 아시고도 제게 사랑을 고백할 수가 있겠습니까".그제서야 왕은 진실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부하의 아내에게 잘못을 빌고 부하를 다시 궁전으로불러들인다.…
문득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과연 요즈음 정치인들이 부끄러움이라는 덕목을 가지고 있을까 의심이 되어서이다. 한 시간을 사이로 이 자리에 가면 이 소리하고 저 자리에 가면 저 소리하고,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눈 하나 깜빡 않고 잡아 떼기가 예사요, 인기연예인을 뽑는 것도 아닌데 갈데 안갈데 쫓아다니며 갖은 아양을 다 떤다. 가장 가관인 것은 무슨 반공단체가 주최하는 토론회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오만방자한 주최측 사회자로부터 온갖 수모를 다 받아가면서도 자신이 반공투사임을 증명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은 차라리 측은했다.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이라면 아무리 대통령 자리가 좋다 해도 과연 이럴 수 있을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끄집어내어서로 물고 뜯는 짓거리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정잡배나 할 짓이다.
후보는 또 그렇다 치더라도 그들을 둘러싸고 도는 정치인들의 짓거리는 더 웃긴다. 거물을 자처하면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몸값을 올리려는 과대망상의 자존주의자들도 웃기고, 실컷 권력을누리다가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오자 격렬한 민권주의자가 되어 입에 게거품을 무는 투사도 웃기고, 후보들이 대접을 소홀히 했다 해서 늙은 과부처럼 토라져 겉도는 소위 정치권력의 실세들도웃긴다. 이들은 제각기 자기들의 태도 여하에 대권이 좌우된다고 호언하고 있지만 과연 국민이그토록 어리석을까. 부끄러움을 아는 정치인이라면 이런 꼴로 이 시대의 희화(戱畵)의 주인공이되지는 않으리라.
새삼스럽게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고도성장 끝에 도달한침체의 늪에서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가고, 부정과 부패는 구조화되어 우리사회의 건전한 벌전의발목을 잡고 있다. 신문에는 도산하는 대기업의 명단이 실려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국가의국제신용도의 하락을 알려 우리를 절망케 한다. 북쪽에서는 김정일의 순조로운 권력 계승에도 불구하고, 수십만의 어린 목숨들이 올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이런데도 후보와 그 주의의 정치인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이들은 이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없이, 어떤 방법으로 고용을 확대하고 부정과 부패의 구조를 어떻게 뜯어고치고 북한의 동포를무슨 수로 기아에서 구출하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오직 표를 얻기 위해 거짓 웃음을 웃고,반칙적인 발길질로 상대를 꺼꾸러트리기에 여념이 없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나라의 살림이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어려워지고, 부정 부패는 더욱 심해져 척결할 길이 없고,북한의 동포는 반쯤 굶어 죽게 되어서, 대권을 잡으면 무엇하고 대통령이 되면 무엇하랴. 이번 선거에는 부끄러움을 덕목으로 가진,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덕목으로 가진 후보를 골라 투표를 해야겠다.
〈신경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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