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 국난 무엇이 잘못됐나

중병에 걸린 한국경제가 졸도끝에 국제통화기금(IMF)의 품안으로 들어가 회생을 추구하는 가냘픈 신세가 됐다.

한국이 경제개발을 시작한 지 35년만에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해 국제적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의 금융기관이나 기업은 아직 한번도 외국의 빚을 제때 갚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경제우등생의 신화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세계 각국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던 (주)한국의 경제활력이 실종돼 국제금융기구의 '수혈'로 재기를 노려야 하는 참담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1만달러 국민소득시대에 도취한 나머지 세계 부자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둘러 가입하면서 너나없이 선진국의 환상에 젖은지 1년도 채 못돼 후진국의 나락으로 추락하는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어쩌다 '아시아의 유태민족'으로 그 명석함과 근면함을 칭송받던 한국인의 저력은 찾을 길이 없이 혼수상태에 빠진 한국경제가 IMF병원의 중환자실로 실려가서 대수술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놓이게 됐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책임은 우리 국민 모두의 것임이 분명하다. 전세계의 시장이 단일화된 마당에 국민 개개인의 경쟁력이 뒤떨어지고 정신마저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만신창이가 된 한국경제 실패의 책임을 1차적으로 정부에 묻고 있다.우리 경제가 1만달러 소득시대를 맞이하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구조조정을 애써 외면하고 그저선진국으로 승격했다는 데만 정신이 팔려 산업의 고도화나 기술개발, 기업의 고질적인 차입경영병폐의 해소책 마련 등 선진국 길목에서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에 대한 대응을 등한시했다.그 대신에 OECD가입이 실현된 작년 12월만 해도 정부는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해 2005년에는 국민소득이 1만5천달러를 넘어서고 2010년에는 완벽한 선진국 수준으로 발돋움한다는 등의 장밋빛청사진만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데 골몰했다.

기업들도 무한경쟁이 심화되는 총성없는 경제전쟁의 와중에서 유일한 무기인 기술개발과 생산성제고에 전력하지 않고 빚을 재원으로 한 투자확대에만 진력했다.

'재벌은 망하지 않는다'는 망상만을 믿고 닥치는 대로 차입을 확대했으며 부족한 인력을 웃돈을주고 스카우트, 인건비가 영국보다 비싼 나라가 되고 말았다.

고금리를 이용한 돈장사에 재미를 붙인 금융기관은 대기업에 뭉칫돈을 대주면서 안이한 영업에파묻혀 있었으며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바둑용어가 거액의 대출금을 내주는유일한 잣대가 된지 오래였다.

국경없는 경쟁에서 무분별한 과잉.과오투자는 수익성의 하락으로 나타나 급기야 올들어 대기업중소기업 가릴것 없는 부도행진을 맞게 됐다.

당연히 금융기관은 수십조원의 부실채권을 삽시간에 거머지게 됐고 대외신인도는 바닥을 모른 채추락, 외국투자자들이 한국과의 돈거래를 기피하는 처지에 몰렸다.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이 지경이 됐는 데도 정부는 허황된 시장주의를 내세운 채신인도를 높이기 위한 긴급처방을 철저히 외면했다.

국민들도 과소비와 사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급증하는 데도 불구하고 김포공항은 해외출국자들로 붐볐으며 위스키, 향수, 골프채 등 외제사치품은 눈덩이처럼 수입액이 늘어날 만큼 고가외제품으로 놀고 마시는 데 혼을 빼앗겼다.

정부, 기업은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국가경제를 침몰케 하는 책임이 있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치욕적인 '금융식민통치'를 계기로 우리 경제를 다시 재건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명제에도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타율적이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에 '고비용-저효율'의 경제병을 치유한다면 다시 한번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한 금융계 간부의 말이 좌절할 수 없는 우리의 각오를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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