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서울의 모 신학대학 학생회에서 발간한 교지에 룸살롱의 접대부가 투고한 글이 실렸는데,그녀가 단골손님으로 관리(?)하고 있던 개신교 목사들과 장로들의 추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내용으로 학교와 교계 안팎으로 물의를 빚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그 소란한 물의 자체가 오히려그 사회의 도덕적 이중성을 여실히 증거하는 것으로 여겨 오히려 고소(苦笑)했지만, 멋모르는 주위사람들은 "아니 목사가…?" "글쎄 장로가…"하면서 어줍잖은 의심과 경원의 표시에 분주했다.글의 모두(冒頭)가 개신교 성직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었지만, 우리사회를 속으로 곪게 만드는도덕적 이중성의 문제는 당연히 특정 종교계 일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잣대 나름이겠지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쉽게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대목이 아니다. 앞의 삽화에 따른 소동은 성직자에 대한 타성적 기대치의 반작용이 빚은 것일 뿐이다. 아무렇게나 집어던진 주사위도각 면에 1/6의 비교적 고른 확률치를 가진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대한민국의 성인 대다수가 이 도덕적 이중성의 콤플렉스에 묶여있다는 진단은 분명 지나치고 심지어 기이해보이기까지 한다. 이쯤되면, "아니, 앞집의 그 근면성실한 영희 아빠도…" "아니, 뒷집의 그 현모양처인 철수엄마도…"라면서 의아심과 항의를 퍼부어댈 지도 모르겠다.
'도덕성'이라는 말이 워낙 개인의 사밀한 구석을 떠올리게 해서 오해의 소지가 많지만, 내가 따지는 도덕적 이중성은 개인의 심성과 태도 이전에 우선 우리사회의 구조와 그 성격과 연루된 것이다. 나는'정신없는 향락주의'와 더불어 '정신만 남아 있는 도덕주의'를 질타한 적이 있는데, 정작문제는 도덕주의는 명분쫓기에 바빠 제 터를 얻지 못한채 하늘 저편을 날고 있을 뿐이고, 그 도덕주의의 근엄한 미소 뒤에서 누구나 부정하는 향락주의만이 우리 삶터의 실제 주인이 되고 있다는사실에 있다. 근대화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는 '뒤풀이 문화'의 와류 속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순결주의가 무력한 수사학(修辭學)으로 끝나고 만다. 개발과 성장의 신화를 일구었던 육체들의 보상을위해서 오늘도 이 뒤풀이문화는 사찰과 교회속으로까지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지난 9월, 영국 성공회에 속한 성직자의 상당수가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켄트베리 대주교의 자서전이 큰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저자인 로버트 런시 경(卿)은 책의 후기에서 "나는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목숨을 끊으려고 무척 애썼다"면서 자신의 폭로가 몰고올 파장을 염려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런 여파가 없었다. 문제를 성직자 개인의 도덕성으로 좁히면 경악하고 탓하고 반성할 사안이겠지만, 현대의 도시생활, 그리고 성직제도의 구조와 성격을 간파한다면 이것은 분석하고 진단하고 또 공동의 처방에 진력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내 눈에 마땅찮은 두 부류의 성직자와 종교인들이 있다. 한쪽은 종교적 엄숙주의에 골몰해서 풍요한 삶과 인성의 성숙을 놓치는 타입이고, 다른 한쪽은 이른바 반(反)종교적 종교인으로 반동적 냉소와 위악(僞惡)속에서 독단을 배양해가는 타입이다. 기이하게도 이것은 좌와 우, 전위(前衛)와 수구, 그리고 도덕주의와 향락주의 등,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경직된 이원구도를 꼭 닮았다. 바로 그사이에서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이미 구조화된 도덕적 이중성의 미로 속을 한없이 배회하고 있는것이다.
〈전주한일신학대교수·철학〉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