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C선택-97대선 역대 대선 투표 흐름

역대 대선에서 나타났던 표의 흐름은 크게 '여촌야도(與村野都)'와 '지역감정','사표(死票)론'등으로 압축해 볼수 있다. 특히 지난 두차례 대선은 지역감정이 최대변수가 됐다. 이번 15대 대선은 어떻게 될까. 선두권형성후보중 영남출신 후보가 없어일단 지역감정이 맹위를 떨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촌야도'는 이미 표의 흐름을 보는 주 관찰포인트라할 수 없다. 다만 3자 구도속에 박빙으로 양자가 다투면서'사표방지론'이 고개를 쳐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또 미디어선거형태, IMF,병역, 건강, 경선불복등 새로운 변수들이 속속 등장, 이번 대선은 역대대선과 또 다른 표의 흐름을 보일것 같다.

역대 대선중 직선으로 치러진 것은 2~7대, 그리고 13, 14대등 모두 8회. 이중 2~4대는 이승만대통령이 70%%를 넘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선거여서 표 분석의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이대통령은 2대에서 조봉암,이시영후보와 대결해 74.6%%, 3대와 4대에서는 선거도중 최대 정적이었던 신익희, 조병옥후보가 각각 사망해 70%%와 1백%%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5대 대선에선 '여촌야도'가 주조를 이뤘으나 6대부터는 지역감정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 7대에서 심화됐고 13대와 14대에서 특히 극단적으로 표출됐다. 63년 치러진 5대 대선에선 박정희-윤보선후보의 표차가 역대 최저인 16만표에 불과했다. 윤후보는 서울, 인천, 경기, 광주, 대전등 도시지역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으나 경남북과 전남북등 농촌지역에서 몰표를 받은 박후보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이들이 다시 맞붙은 67년 6대 대선은 도시지역의 야당바람이 한풀 꺾이면서 저변의지역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 승부를 가르는 주요 원인이 됐다. 이때문에 두 후보의 표차는 1백16만표로 더욱 벌어졌다.

박정희-김대중후보가 맞붙은 71년 7대 대선에선 당시 공화당이 3선개헌의 정치적부담을 지역주의로 희석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바람에 야당단일후보의 등장에도불구하고 지역감정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박-김후보의 도별 득표가 전북 30만대 53만, 전남 47만 대 87만, 경북 1백33만 대 41만, 경남 89만 대 31만표로 완연하게 대비됐다.

87년 13대 대선에선 경북(노태우), 경남(김영삼), 호남(김대중), 충남(김종필)등 각지역별로 출신후보가 나와 서로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조장한 결과, 노태우후보는대구(70.7%%)와 경북(66.4%%)에서, 김영삼후보는 부산(56%%)과 경남(51.3%%)에서, 김대중후보는 광주(94.4%%)와 전남(90.3%%) 전북(83.5%%)에서, 김종필후보는충남(45%%)에서 각각 큰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기존의 '여촌야도'의 틀이 무너져 내린 점.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등 5대도시중 노후보가대구에서 '압승', 서울에서 '백중세'를 보인 것이다. 노후보가 줄곧 앞서가던 김영삼후보를 제치고 당선될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92년 14대 대선또한 '우리가 남이가'란 구호와 함께 선거 일주일 전 터져나온 부산초원복집사건이 지역감정을 자극, 영남권표가 경남출신 김영삼후보에게 결집됨으로써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9백97만여표(41.4%%)를 얻은 김영삼후보는 2위김대중후보가 얻은 8백4만여표(33.4%%)를 1백90만여표차로 누르고 월계관을 썼다.당시 김영삼후보가 대구(59.6%%,69만여표)와 경북(64.7%%, 99만여표)에서 얻은 표가 약 1백70만표. 이때문에 "김영삼 당선의 일등공신은 TK"란 말도 나왔다. 〈裵洪珞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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