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우리나라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靑瓦臺)'터'의 내력을 보면 굴곡이 심했던 한국사(韓國史)를 읽는것만 같아 안쓰럽다.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청와대 자리는 원래 고려왕조때 이궁(離宮)터이던 것이 조선초 세종8년(1426년)에는 경복궁 후원으로 바뀌었다. 세종은 이곳에 연무장(鍊武場)과 과거장(科擧場)등을 마련했던 것. 일제(日帝)는 1927년 이곳에 오운각(五雲閣)외의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총독관저를 지었다. 들리는 바로는 일제는 북한산 지기(地氣)가 경복궁에 뻗치는 것을 누르기 위해 이곳에 관저를 지었다는 것이다. 광복후 한국에 진주한 미국의 군정장관 관저로이용되다 48년 정부수립후 대통령관저가 되면서 이승만(李承晩)초대대통령이 경무대(景武臺)라 명명했다. 지금의 청와대란 이름은 60년 4·19의거후 민주당 정권당시 윤보선(尹潽善)대통령이 '푸른 기와집'이란 뜻으로 개칭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60년이래 38년동안 쓰여온'청와대'란 이름을 민주시대에 걸맞고 좀더 친근감가는 이름으로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한다.인수위측은 "국민의 정부라는 새 이미지에 맞고 탈권위주의적인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는 것이어서 자칫하면 청와대란 이름이 사라질 운명이다. 물론 새시대에 적합한 명칭을 찾고자하는 인수위측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시점에 정작 중요한 것은 겉껍데기 이름이 아니라 '속찬알맹이'가 아닐까 한다. 지금이 어디 이름탓이나 할 때인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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