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만수 나의인생 (13)

78년 한양대에 입학하면서 나는 최연소국가대표로 발탁돼 그해 2월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게됐다.해외여행은 처음이어서 상당히 설레었는데 특히 재일교포 장훈선배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떠나기전날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었다.

당시 40대 초반이던 장훈선배는 롯데 오리온즈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찾게된 가고시마 캠프가 바로 롯데의 전지훈련장이었다.

도착하는날 우리는 롯데 선수들과 상견례를 가져 이때 처음으로 장훈선배를 대면하게 됐다. 막상대하고보니 신문이나 TV에서 보던 것보다 체구가 엄청나게 커 놀랐다.

이튿날부터 우리선수단도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이날 장훈선배가 나를 불렀다. 깜짝놀라 가보니 장훈선배는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이상 내 방으로 올라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얼른 숙소로 달려가 룸메이트이던 김일권선배(현쌍방울 코치)에게 얘기를 전하니 "너한테 뭐를 줄모양이니 빨리 가봐라"고 말했다.

부랴부랴 장훈선배의 방으로 올라갔는데 궁궐같은 롯데호텔의 스위트룸을 혼자서 쓰고 있었다. 장훈선배는 나를 보더니 "네 소문을 들었다. 앞으로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될 것으로 믿는다"며 나무배트와 글러브 하나를 주었다.

평생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마음먹고 신주단지 모시듯 배트와 글러브를 갖고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그런데 김일권선배가 배트를 보더니 "너는 글러브나 가져라"며 배트를 가져가 버렸다.김선배는 다음날 테스트를 하겠다며 공을 치다가 방망이를 부러트려 얼마나 화가났는지 몰랐다.그러고나서도 장훈선배는 훈련중 개인지도를 해주거나 쉬는날 불러 드라이브를 함께하는등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줬다.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귀국한뒤 그해 가을 한국에서 '장훈야구교실'이 열려 다시 볼 수 있었다.장훈선배는 40대로서 은퇴를 앞두고 있었지만 스윙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라 인상적이었다.

이후 장훈선배는 1년에 한두차례씩 만났고 84년에는 삼성라이온즈에서 타격고문으로 위촉해 다시한 번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정리.許政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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