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오리무중의 시

장해(張楷)는 후한 중기의 사람으로 '춘추'와 '고문상서(古文尙書)'에 정통한 학자였다.제자도 많고 명성도 높았으나, 벼슬하기를 꺼려 산중에 은서하고 있었다.

순제(順帝)가 즉위하면서 "장해는 덕행에 있어서는 원헌(原憲)을 사모하고 지조에 있어서는 백이.숙제를 목표로 삼아서, 산중에 숨어 살고 있지만 그 고결한 뜻은 군속(群俗)을 빼어났다"며 격찬한 다음, 하남(河南)의 장관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그는 병을 구실로 해서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장해는 도술(道術)에도 능통, 오리무(五里霧)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오리무'란 5리나 계속되는 큰 안개를 이름이다.

이때 관서(關西)의 배우(裵優)라는 사람도 삼리무(三里霧)를 일으킬 수 있었는데, 그는 장해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으나, 장해는 자취를 숨기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후 배우는 안개를 일으켜 나쁜 짓을 하다가 잡혔는데, 장해로 부터 그 기술을 배웠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장해는 잡혀 옥에 갇혔으나 결국 무죄임이 밝혀져 석방돼 70의 장수(長壽)를 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장해전에 나온다.

장해가 일으킨 '오리무'를 근거로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5리나 낀 대단한 안개때문에 방향을 잃는다는 의미이거니와, 마음이 갈팡질팡하여 어떻게 했으면좋을지 모르는 경우에도 이 말이 쓰인다.

우리는 지금 '오리무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해말 외화부족으로 비롯돼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우리경제가 오리무중이고 역동력을 상실, 착 가라앉은 사회도 오리무중이다.

부도를 낸 중소기업대표가 해결사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는 2중고(苦)의 생활, 옷가게를 운영하던30대 주부가 장사가 안돼 채무압박에 시달리다 두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들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시리게 하는 비감어린 장면들이다.

'정리해고제'관련법이 며칠전에 국회를 통과했다.

휘몰아 칠 감원 태풍앞에서 숨죽이고 있는 근로자들의 마음도 '오리무중'상태이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기에....

요즘 일부 직장의 화장실에는 IMF한파로 무력해진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글귀가 나붙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못난 점도 아름답게 보면 눈부신 매력이 된다'등은 직장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짧은 글귀.

'남편과 아들이 함께 동화책 읽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아이는 좋아하는데 남편의 어깨는 왠지힘이 없어 보입니다. 남편에게 힘이 돼주고 싶습니다'

해직당한 남편을 바라보는 여직원의 고백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이같은 글귀는 IMF한파속에서도 따뜻한 감성을 자극, 짙은 안개속을 헤쳐나갈 수 있는 '한줄기빛'을 찾으려는 처절한, 그러나 용기가 묻어 있는 몸부림으로 여겨진다.

일주일후면 새대통령이 취임한다. 여론의 검증을 거쳐 청와대 비서실 진용을 갖춘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23일에 총리와 감사원장을 지명하고 26일 조각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믿지 못할 사람은 쓰지 말 것이며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는 글귀처럼 탁월한 용인술(用人術)을 발휘, 서두에서 인용한 장해와 같은 인재를 발탁하고 안개에 둘러싸인 인물을 배제해야 '인사가 만사'라는 깜짝쇼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곧 3월이 온다.

봄바람과 함께 우리주위를 휘감고 있는 안개를 말끔히 걷어내자.

수억대가 오간 교수채용비리의 안개, 거액의 돈거래를 해온 판사와 변호사들간의 '검은 공생'의안개도.... 마음 다잡아 먹고 바늘구멍에 들어 가는 심정으로 '오리무중의 시대'를 빨리 마감하자.〈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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