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린 중국 닫힌 중국 "이렇게 산다우"

중국에서의 어느날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새로 방영되기 시작한 TV연속극을 보게됐다. 타이완 작가 차오위(曺愚)의 동명 화극(話劇)을 원작으로 제작된 '레이위(雷雨)'라는 제목의 20회짜리연속극이었다. 미모의 인기여배우 왕지(王姬)가 주인공으로 애상적인 발라드풍 주제가에 소나기가암시하는 비극적인 내음 등으로 시선을 끌었지만 내용은 근친상간이라는 엄청난 불륜을 담은 드라마였다.

1920년대 텐진(天津)의 한 상류층 가정이 무대. 부유한 홀아비가 아름다운 새 아내를 맞아들인뒤계모와 전처아들, 그리고 이부(異夫)남매사이에 벌어지는 금지된 사랑과 비극적 파멸이 복잡하게얽혀있는 내용이다. 심각한 사회병리적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이런 드라마가 인민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국가에서, 그것도 중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매체인 중앙방송국(中央電視臺)의 대표채널을 통해 전국에 방송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재방송이었다. 그만큼 인기가높았다.

한국에서라면 방송국이나 신문사로 빗발치는 항의전화가 잇따를 법한데도 중국인의 정서는 우리와 달랐다. 대국적인 기질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사람들로부터 한번도 그 드라마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드라마 '레이위'의 경우는 비록 극단적인 예라 치더라도 요즘의 중국, 특히 도시에서 배우자아닌사람과의 잘못된 사랑 즉 '훈와이리엔(婚外戀)'이 뜨거운 이슈로 등장, 사회학자들조차 이 '유행병'에 대해 논문을 발표할 정도이다.

물론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사는 곳에 훈와이리엔이 없었던 시대는 없지만 중국의 경우 특히 문혁(文革: 1966~1976)기간엔 남녀의 정상적인 사랑마저도 감시의 대상이 됐다. 당시엔 배우자 아닌사람과 애정관계를 가진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발각과 동시에'포시에(破鞋: 떨어진 신발)'라 불리며 인간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이후부터 훈와이리엔이 다시 등장, 90년대 들어서는 급변하는 중국사회의 음지에서 화려한 태깔의 독버섯으로 포자를 퍼뜨리고 있다. '빵따콴(傍大款)'이라하여 돈많은 유부남과 젊은 미혼여자들의 혼외관계가 주류를 이루지만 유부남과 유부녀, 유부녀와 미혼남 등으로다양화(?)되고 있다.

이같은 훈와이리엔은 농촌이나 경제낙후지역에서는 보기드물지만 도시에서는 해가 갈수록 급증,높아가는 도시지역 이혼율의 한 원흉으로 지목된다. 관련통계에 따르면 베이징의 경우 이혼율이지난 81년 2.1%에서 91년엔 16.6%로 높아져 훈와이리엔이 주요원인으로 지적되며, 92년 전국의 1백80만 이혼안건중 20%가 남편의 불충(不忠: 혼외관계를 의미)을 이유로 하고 있다.저명한 르포작가 뚜웨이뚱(杜衛東)은 '第三者啓示錄'(第三者는 배우자 아닌 애인)이라는 저서에서"훈와이리엔은 중국 현대화과정의 한 현상이며 사회개방과 관련이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婚外戀 現象硏究'를 주제로한 논문을 발표한 이에웨이리(葉維力) 미국 매사추세츠대 교수는 "훈와이리엔 현상은 현대 중국사회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창구"라면서 " 낡은 사고방식과낡은 해결방법으로는 결코 풀 수 없는 문제이며, 변화하는 중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장을 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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