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진속의 인생

가랑비가 내리던 지난주초에 무태길을 지나가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예비부부가 야외촬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저 고운 옷을 비에 적시는구나 촬영날짜를 바꿀 수는 없었을까'하며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신랑신부는 사진사의 연출에 따라 그 또래의 많은 커플들처럼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는 액자속의 주인공이 되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 예식장에서나 결혼식을 끝낸 신랑신부는 서둘러 폐백실로 자리를 옮겨 부모님이 앉을자리에 미리 앉아 사진부터 찍고 폐백을 드린다. 폐백을 드린 후에는 음식모양이 흐트러져서 사진이 곱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절을 받기 전에 자리를 빌려준 어른들은 자릿세는 받지 못하고 절값만 빼앗긴다.

언제부터 우리가 기록남기기에 이렇게 치밀했던가. 인생의 새출발을 알리는 결혼식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바람이지만 어른들을 모셔 절을 올리고 덕담을 듣고 던져주시는 밤·대추를 고이 간직하던 전통과, 그렇게 흐트러진 음식상이야말로 남남이었던 두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 아니겠는가. 오직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아래 앉을자리를 구별하지 못하고 어른앞에서 업고 안고 또 그 연출에 박수치며 흥겨워하는 모습을볼 때 아이를 낳을 때는 어떤 사진을 남기려 할까 미리 걱정이 된다.

단 한번밖에 입지 못하는 공주패션의 예복을 입고 떠난 신혼여행에서 배경과 포즈는 같으나얼굴만 다른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일은 언제쯤이면 끝날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언제까지 내 인생을 연출해야할까.

오월의 기차가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는 어디에 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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