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흥덕왕릉 소나무

다시, 폭우 내린다.

쏟아지는 밤비 뚫고 흥덕왕릉 간다. 삶과 죽음은 등을 맞댄 것이니, 돌아서면 죽음이고 다시몸 돌리면 삶인 것을, 무에 그리 아웅다웅 살았는지 답답할 제면 흥덕왕릉 간다.여름의 입구 지나 왕국의 경계를 넘으면, 그 옛날 소도의 괴이한 나무처럼 왕릉을 감싼 솔숲 컴컴하게 앞을 막는다. 왕릉까지 솔숲은 불과 30여미터. 그럼에도 자주 길을 잃는 아둔한발바닥은 온통 흙탕물로 질척인다.

하긴, 비단 오늘뿐이었는가. 돌아보면 우리네 발길은 늘 진창에서 허적이지 않았던가. 정치에 속고, 파산에 울며, 퍼덕퍼덕 기어왔던 길. 진압봉과 화염병, 배반과 증오, 별리와 눈물,자만과 시기로 뒤덮인 길. 돌아보지도 않고 거듭 그러한 길 만들며 살아오지 않았던가.이 모든 세속도시의 잔해가 흥덕왕릉 솔숲이다. 척박한 땅은 줄기를 뱀처럼 비틀었고, 햇살을 향한 욕망이 가까스로 밀어낸 잔가지들은 이미 병으로 가득하다. 한 시인은 이 숲을 일러 지옥노라 했으니, 세기말의 화탕지옥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리요.그러나, 하늘 아래 상처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검붉은 외상이며 비릿한 내상까지 온통 껴안고도 그 지옥도 견녀나갈 수만 있다면, 아득하여라, 천만리나 되는 듯 푸르른 그 끝에서, 엄청난 고요를 품은 왕의 영토 만나게 되나니, 삶의 끝은 때로 이런 장엄한 비밀에 이르기도하는 법. 아니, 오히려 그렇게나 뒤틀린 소나무숲이 없었다면 어찌 흥덕왕릉의 고요가 이렇게 찬연할 수 있겠는가?

다시, 폭우 내린다. 곪아터진 상처 몽땅 둘러메고, 흥덕왕릉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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