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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윤기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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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 남은 운명의 장작

옛 그리스 땅에 사납기 그지 없는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온 나라를 짓밟았다. 왕은 멧돼지를 잡는 영웅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멜레아그로스가 마침내 이 멧돼지를 죽이고 영웅이 되었다. 멜레아그로스는 무사들 무리에 합류한, 발 빠르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처녀 아탈란테에게 영광을 바쳤다. 그런데 처녀에게 영광이 돌아간 것을 질투하는 사람들이있었다. 영웅의 두 외삼촌이었다. 두 외삼촌은 한갓 아녀자에 지나지 않는 아탈란테에게 영광을 바침으로써 온 그리스 용사들을 욕되게 한다고 생질을 비난했다. 영웅은 그 자리에서사랑하는 처녀를 모욕한 두 외삼촌을 찔러 죽었다.

멜레아그로스의 어머니 알타이아는 아들이 괴수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뻐했다. 그러나 승전보에 이어 곧 두 아우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알타이아에게 두 아우의 부고는 참으로슬픈 소식이었을 것이다. 두 아우를 죽인 당사자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래도 참을만한 소식이었을 터이다.

알타이아에게는 타다 만 장작개비가 하나 있었다. 아들 낳던 날 난로 속에서 타고 있던 장작이었다. 아들 낳던 날, 운명의 여신은 난로에서 타고 있던 장작과 아기를 가리키면서 이런말을 한 일이 있다.

'오늘 태어난 아이의 수명은 저 장작개비의 수명과 같겠구나'

알타이아가 간직하고 있던 장작개비는 그러니까 그 말을 듣고 알타이아가 황급히 난로에서꺼내어 물에다 집어넣어 불을 끈 바로 그 장작개비였다. 알타이아가 그 장작개비를 집안 한구석 은밀한 곳에다 감추어둔 덕분에 멜레아그로스는 헌헌장부가 되도록 자랄수 있었던 것이다.

알타이아는 아들의 영광을 기뻐할 것인지, 두 아우의 죽음을 복수해야 할 것인지 망설이다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친정이 초상집인데 내 집안의 영광만 기뻐할 수는 없다. 친정에 경사를 안길 수 없으니, 시집을 초상집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일. 그러니 아들아, 어미로부터 받았던 그 목숨, 이제 돌려다오'알타이아가 이러면서 장작개비를 불 속에 던져 넣어 버리는 순간, 멜레아그로스의육신도 재가 되고 만다. 1세기의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의 그리스.로마 신화집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수첩'이라는 이름이 붙은 한 텔리비전 채널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알타이아를 떠올린다. 이 프로그램은 연전에 고아들을 맡아기르던 한 스님을 우리 시대의 작은영웅으로 떠올린 일이 있다. 그 스님에게는 많은 액수의 후원금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이 프로그램은 몇년 뒤에, 고아들 몫으로 들어온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를 걸어 이 스님을사기꾼 비슷한 것으로 급전직하시킨 일도 있다. 스님 잘못만도 아니겠고 프로그램 잘못만도아니겠다. 낳아주기도 하고 키워주기도 하고 죽여주기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견이 속하고 있는 여론이고 이 여론을 부추기도 하고 기를 꺾기도 하는 것이 매스컴이다. 매스컴은 어떤 의미에서는 알타이아와 같다.

나는 박세리가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고 한두 번쯤의 소규모 대회에서는 우승에 실패하기를 바라던 사람, 박찬호의 10승 고지점령이 지난 해보다 훨씬 어렵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던 사람이다. 궁법은, 세번이나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지 않으면 스스로 겨냥하는 자세를 살핀다 했다. 나는 그들이 이로써 아주 천천히, 딛는 곳마다 터를 단단히 다지면서 정상에 오르기를 바라던 사람이다. 차범근을 보라. 한국은 차범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대회가 치러지는 것이, 그가 조성한 축구 저변 환경과 어찌 무관할 것인가? 그런데 차감독은 바로 그 월드컵 무대에서 무참하게 추락했다. 알타이아, 혹은 매스컴이 타다남은 운명의 장작을 다시 난로에다 던져 넣은 것이다. 박세리, 박찬호, 차감독뿐만이 아니다.우리 모두, 타다남은 우리 운명의 장작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 주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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