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개성(開城)상인들은 자신들의 조직결집을 위해 이런 계훈(契訓)을 만들었다고 한다. '낱콩이 되지말고 메주가 되자'. 요즘 국가기관 시장·도지사실 같은데 붙여두는'국정지 표','시정방침'이나 기업체의 사훈(社訓)비슷한 것이지만 표현이 독특하고 말 맛이 깊다. 한마디로 낱콩은 쏟아 놓으면 제각각 흩어져 굴러 버리지만 메주로 만들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중심을 향해 단단하게 굳어지고 뭉쳐진다는 단합의 정신을 강조하는 의미를 담 고있다. 다시 말해 자기 상점과 거래처의 개별이익만을 좇아 낱콩처럼 뿔뿔이 흩어져 다 투지 말고 메주처럼 뭉침으로써 더 큰 전체의 공익을 추구하자는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 말이다.
최근 나라사정은 물론이고 우리 지역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도나도 메주가 아닌 낱콩들이 돼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현정부가 내건'국정지표'란 이름의 국훈(國訓)도 그렇고 시청에 걸린 시정방침, 여·야의 정당강령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럴 듯하고 반듯하다. 비자금을 빼돌리고 부도난 한보나 해태, 청구같은 부실대기업들도 사훈 만은 예외없이 내용이 고상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막상 그 좋은 훈(訓)들을 머리맡에 걸어두고 있는 조직의 일부에서 저질러지는 일 들을 보면 훈 따로 행동 따로다. 우선 정부의 국정지표부터 보자. 현정부의 국정지표는 4 가지 항목, 그중 2가지는 국민화합 실현과 법 질서의 수호다. 국감 과정에서 논쟁이 된 ' 호남인사 싹쓸이 등용'의 시비는 국민화합 실현이란 지표와는 거리가 있는 시비거리였다. '편중인사'의 구체적 수치논란은 새삼 재론할 것도 없다.
문제는 집권층이 이왕이면 호남사람을 챙기겠다는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야당측에게 논 쟁의 여지를 남겨준 인사를 했다는 데 있다. 우리지역사회도 마찬가지다. '교통문제해결, 생활환경 향상' 등을 시정방침으로 내걸었음에도 운수업자의 뇌물을 받은 극소수 시청간 부의 부패는 시장의 시정개혁 의지나 시민의 자존심이야 어떻게 되든 나는 뇌물을 챙겨 야겠다는 '낱콩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투철한 사명감'을 사훈으로 내세웠던 청구도 지역 경제를 메주처럼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기업인의 사명감을 버리고 비자금을 챙긴 낱콩의 식 때문에 쓰러진 셈이다.
'절약'이 사훈이었던 한보가 망한 것이나 '보람을 심는 기업'을 내세운 해태가 보람대신 오욕속에 쓰러진 것도 메주정신이 없어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 '도덕과 신의가 지켜지는 사회건설'을 강령으로 한 자민련이 대구지역민으로 부터 다소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도 여권정당으로서의 정치적이익에 연계되면서 신의와 정치도의를 의심받은 탓은 아닌지 새 겨볼 일이다.
한나라당이'경제정의 실현 깨끗한 정치문화 창출',그리고'확고한 국가안보체제 확립'을 강 령으로 내걸고도 세풍과 총풍의 오해와 비난에 휩싸여 있는 것 또한 훈 따로 행동따로란 비판대상이 돼있다. 특히 교육의 자율성과 전인교육을 내세우면서 교원정년문제는 교육계 의 자율적인 내부개혁 기회 부여나 교육전문집단 내부의 조정의견 수렴과정과 노력도 없 이 나이가 많으면 무능하다는 식의 단순 개혁논리로 타율적 개혁을 가하는 것은 무슨 일 이든 함께 순리를 모색해 보고자 하는 화합정신이 부족해서다.
정치권 또는 통치집단이 '나의 사고와 의식과 판단은 항상 옳다 그러니까 군말없이 따르 라'고 하는 식의 일방적 개혁은 하위 전문집단의 의견을 아래로 보아온 우월의식에서 나 온 것으로 불신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건국이래 어느 때보다 모든 계층의 총화와 단합, 그리고 나라의 국훈에서 초등학교의 급훈(級訓)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공동의 다짐들을 꼭 지켜 나가는 신뢰가 필요한 때다. 사회 각계층조직마다 훈따로 행동따로의 낱콩의식을 버리고 미욱하지만 공동의 이익을 지키는 메주정신을 가져보자
金 廷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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