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경찰대학의 여학생 지원율은 급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올해도 경찰대학 총정원 1백20명의 10%(12명)가 여학생 몫. 지원생이 매년 급증하고 있어 경찰대학의 여학생 할당률은 곧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98년 현재 33명이 재학중인 경찰대학에 대한 여학생 지원·재학 현주소는 여경에 대한 인식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근년들어 전국의 여경은 1천3백여명에 이르고 대구지방경찰청에는 방범소년계장 설용숙경정을 비롯하여 경무(민원) 방범(소년) 수사(조서·수사) 형사(형사관리) 교통(교통민원·사고조사) 정보·보안(외사포함) 기타(공항·면허)등에 67명이 근무하고 있다.동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활약상으로 현대 여성들에게 단연 인기 캡 직종으로 손꼽히고 있는 대구 여경(女警)의 뿌리는 53년전인 1946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경(女警)은 광복과 여성해방이라는 시대적 산물로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생긴 것이 제도적 효시. 주임무는 여성 범죄인의 감시, 불량소년·소녀에 대한 조치, 미아와 노인 구호 등이었다.
1947년 2월17일 수도관구 경찰청에 여자경찰서가 창설된데 이어 대구여자경찰서는 7월1일에 창설됐다. 초대 정복향(국회의원, 초대 경북 대구여성회관장 역임), 2대 노마리아(항일운동가) 3, 5대최태향, 4대 김희숙씨(현 경우회 부녀회 중앙회장)등이 단명으로 끝난 대구여자경찰서의 수장으로서 활약상을 보였다.
"47년에 창설, 57년에 폐지되기까지 여경은 청소년의 선도, 윤락 여성의 계도를 중심으로 풍속사범단속과 대공분야에서 건국에 동참하였습니다"
대구·경북 경우회 부녀회 구봉순회장(대구시 동구 신평동)은 꽃다운 나이에 험난했던 치안분야에 투신했던 대구 여경 1세대들은 여자경찰서가 폐지되면서 옷을 벗고 무언의 항의를 벌이거나일반 경찰서로 흡수됐다고 전한다.
이 가운데는 이미 유명을 달리했거나 왕년의 기백은 사라지고 평범한 할머니들로 변모했지만 당시의 용기·정의감·정열은 남달랐다.
"해방 이후 시작돼 건국의 일선에서 공산분자들과 생명을 걸고 싸워 이나라를 지켰고 선각자로서국가발전에 기여했다"는 지영화씨(경우회 부녀회 사무국장)은 근무구역이 정해진 남자경찰들과달리 경북 도내 전역에서 근무했다고 밝힌다.
동란후 대구여자서원이 국군장교와 동거한 여간첩을 검거했나하면, 개성여경은 물장사로 가장하여 70만환의 불법자금을 환수하는 성과를 올렸고, 포로교환에서도 궂은 일을 담당했다. 포로교환에 나갈때는 물론 정복을 착용하지 않고, 평범한 여성들처럼 치마저고리를 입었다."작전이 있어서 나갈때면 꼭 사진을 찍어두는 버릇이 있었어요. 어느때 어떻게 총맞고 비명에 횡사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거든요"
종전후 포로를 맞교환하는데 악이 찬 북한여군 포로들이 밥을 주면 내팽개 치고, 옷을 갈아입히려면 잡아뜯고 난동을 부려 사복차림의 대구여경들이 투입, 무마시켰다.
당시 대구여경들은 부녀단체·정당 동향을 파악한 사찰경찰, 부녀자범죄수사에 나선 공안경찰, 악풍을 시정하기 위한 문화경찰, 가정불화를 사전에 막는 예방경찰, 기아·고아를 양가에 인도하는보호경찰의 여러 역할을 맡았지만 미장원 영업감사까지 담당하여 요즘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쟁 직후 대구시내에는 7개의 댄스홀이 있었습니다. 내국인의 출입이 금지된 그곳에서 달러유출·군수품 밀거래를 단속했는데 판검사도 패스(출입증)가 없으면 현장에서 데려갈 정도로 굉장했습니다"
여경들이 미군헌병, 임털보(임선돈씨의 별칭)와 짝을 맞춰 단속을 나가보면 최고학부를 나온 여성들도 6·25이후의 피폐한 삶을 견디지 못하여 줄담배를 피면서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유곽에머무르는 일이 허다했다.
여러 직종 가운데 경찰제복을 입은 여경들이 권한을 갖고 사회질서를 잡아나가면 일반 여성들도덩달아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처럼 만족감을 느꼈다.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대구여자경찰서가 창설 10년만에 폐지키로 결정, 여경들은 보안과 여경계나 경찰서내 여경반으로 흩어지자 적잖은 논란이 벌어졌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철안(당시 국회사회보건분과위원)은 "국가예산이 없어여경을 일반경찰서에 편입시킨다는 것은 위법이다.
수많은 윤락여성에 대하여 하등의 사회정책도 서있지 않은 현실정에서는 아직 해체시켜서는 안된다"고 여경 존치론을 폈으나 서울지검 조인구검사는 "여경에서 검찰로 넘어온 여자범죄건수는 한건도 본 적이 없고, 사실상 부녀에게 혜택을 준 바가 보이지않는 이상 실효없는 기관은 없애는것이 좋다"고 폐지론을 폈다.
미국에서 여경제도가 폐지되는 제도변화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주장도 끊이지않고 있는 가운데 여자경찰의 능력검증은 이미 끝났다. 영국의 런던경찰이나 파키스탄의 여자경찰제도를 보면 지역에서도 여자경찰서장의 출현도 머지않은 것 같다.
〈崔美和기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