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역대 정권은 정권 초기 이구동성으로 협동조합 개혁을 공론화했지만 한번도 속시원한 뒤끝을 만들지 못했다. 이는 협동조합이 복잡한 운영논리를 갖고 있는데다 각 단체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고려가 변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부처는 부처대로 관할권 확장 의도를 버리지 않았고 생산자단체는 단체대로 자기영역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개혁작업은 용두사미에 그쳤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 개혁에서도 갖가지 뜬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농가부채 대책을 세우겠다는 국민의 정부가 협동조합 수사로 농업정책 실패에 대한 비난여론을 무마하려고 한다', '모협동조합 수뇌가 출신지역에 의존해 다른 협동조합 영향력 약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 모부처가 협동조합을 관할권 아래 두려고 한다'는 등의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의 농.축.수.임협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비리 사실이 드러난 몇몇 간부를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협동조합 개혁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협동조합 간부수사를 앞세워 정부가 의도한 개혁안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반면 검찰 수사를 여론무마용으로 쓴 뒤 협동조합 개혁에 손을 놓을 것이라는 상반된 추측도 없지 않다. 이와 함께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작업이 공룡화한 협동조합의 겉모습만 바꾸는데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보이기도 한다.
협동조합 개혁 방향을 결정할 주요 쟁점과 해결 방안을 살펴본다.
◇경제 신용사업 분리
경제사업과 신용사업 분리는 쉽게 말해 '버는 돈'과 '쓰는 돈'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농협의 경우 중앙회와 회원조합이 해마다 신용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5조원 이상을 경제사업으로 돌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협동조합은 신용사업에 치중했고 경제사업은 부차적인 문제로 밀렸다. 경제사업의 현실적 필요성과 부실 경영 사이에 '딜레마'가 생긴 것이다.
지난해 4월 협동조합개혁위원회는 조직개편 문제와 관련해 △독립사업부제 강화 △협동조합은행 및 연합회 체제 △농.축.임.삼협중앙회 통합 및 독립사업부제 강화 등 3개 안을 내놓았다.
어떤 경우라도 신용과 경제부분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협동조합 관련 기관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총론이 아닌 각론에 들어가면 각 협동조합의 견해가 달라 의견통합이 안되고 있다. 지난 95년 농림부 안에 협동조합 개혁단을 설치하고도 조합 반발로 이를 분리하지 못한 것이 이 작업의 어려움을 반증하고 있다.
◇대출금리 인하의 명암
농협, 축협 등에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농협중앙회는 정부 의도대로 대출금리를 연 14%에서 12%로 낮췄다. 왜 지금까지 대출금리를 높게 받았는지 또는 금리를 낮출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설명이 없었다.
언뜻 보기에 대출금리 인하는 농민에게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2% 포인트 금리인하로 예금 이율이 떨어져 협동조합 수신고 감소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다시말해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배당금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농민이 출자한 돈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 스스로 금리를 낮춰 농민 손해를 가중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는 정부가 손실에 따른 충당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또다른 문제를 남긴다.
경북북부지역의 한 농민단체는 금리인하에 대해 "김대중 정부의 농업정책 포기 사례"라고 주장한다. 농가부채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가 농협에 책임을 돌려 협동조합 부실을 농가부채의 원인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협동조합 개혁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대대적인 사정 여론을 업고 협동조합 부실을 부각시킨 뒤 농업정책 오류를 덮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농민회 한 관계자는 "협동조합 개혁을 외치다가 갑자기 사정 바람이 일어 오히려 농업개혁이 방향을 잃을 수 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사정이 아니라 정책 일관성"이라고 강조했다.
◇생산자단체 갈등
협동조합 개혁안이 최종 결정될 경우 농.축.임.인삼협 등 생산자단체 내부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갈등의 핵은 농협과 축협이다. 지난해 통폐합 문제가 불거졌을 때 각 단체가 보여준 태도는 대조적이었다.
농협(직원 7만여명)은 비교적 느긋한 편이었고 축협(직원 1만7천여명)은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농협 측은 어떤 안이 결정되더라도 결과적으로 다른 생산자단체를 흡수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축협 측은 독립사업부제가 아닐 경우 조직이 존폐 갈림길에 선다는 불안감을 가졌다. 축협 관계자들이 서울에서 집회를 가진 점과 농협이 이 문제에 관해 입단속을 한 점에서도 양측의 시각차를 알 수 있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모단체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금 농협과 축협은 어떤 정책이 농민 이익을 최대한 대변할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 정부가 어느 편의 손을 들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는 분위기다. 이들 단체가 단체 이기주의를 버리지 않는 한 협동조합 개혁은 기형을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선택
김영삼 정부와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부도 협동조합 개혁을 농업구조조정의 주요 축으로 삼았다. 하지만 개혁의 방향없이 당위만 강조해 협동조합간 대립을 첨예화시켰다. 정권 출범 초기의 개혁 골자는 협동조합 통폐합이었지만 정부 안에서도 그 해석이 달랐다.
협동조합 한 관계자는 "정부가 10년 이상 같은 사안을 놓고 대립하는 각 협동조합에 개혁 방안을 제시하라고 한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라고 비판했다. 10개월 이상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부 부처와 부처, 협동조합과 협동조합의 소모전이 계속됐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검찰 수사와 여론에 의지해 협동조합 개혁을 이끌 것이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실이라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조합장 직선제를 비롯한 농협법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다.
〈全桂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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