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의 날 기고-법치구현과 준법정신

5월1일을 '법의 날'이라 불러온지도 36년째가 되지만 대다수 시민들에게 이 날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날은 아닐 것이다. 사실 필자도 '법의 날'이라 해서 특별한 의미를 두어 본 적도, 진한 감동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숱한 법들 중에 무슨 법을 기념하는 날인지조차 잘 모른다.

해마다 7월17일은 헌법을 만든 경사스런 날이라 하여 경축행사와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하루를 쉬기도 하여 그 날의 의미가 그나마 강하게 다가오지만 5월1일은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뉴스를 통해서야 그저 '오늘이 그런 날이었군' 하고 넘어가곤 한다.

이는 조상의 제삿날, 결혼기념일, 가족의 생일 등 달리 기억해 둘 날들이 많았다거나 생계를 이어가는데 정신이 없었다거나 하는데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법에 대한 무관심이나 경시, '법치(法治)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 하는 냉소감 내지 실망감 등도 한몫을 차지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현존하는 모든 법을 증오하는 사람이라면 매해 5월1일 크게 격분한 심정으로 제사상이라도 차려 기존 법을 애도하고 새로운 법을 창조하고자 고민하는 날로 기억이라도 할 터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사회에 이렇게 진지하게 법을 증오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원래 '법의 날'은 1963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열린 '법의 지배를 통한 세계평화대회'에서 모든 나라에 '법의 날'을 제정하도록 하자는 권고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1964년부터 대통령령에 의해 '국민의 준법정신을 앙양시키고 법의 존엄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정되었다고 한다.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깨닫는데에 무슨 특별한 날이 필요하랴만은 적어도 이 날에는 모두가 법을 지키도록 애를 쓰는 것이 자신은 물론 이웃의 평화와 행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 보자는 취지로 이해하면 족할 것이다.

또 자신이 법을 어김으로 해서 고통받는 이웃은 없었는지를 돌아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이러한 법률들은 이렇게 고치는게 시민들에게 평화와 행복에 이바지하지 않을까 상상이라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면 매우 값진 날이 될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굳이 관(官)에서 지정한 '법의 날'이 영 마음에 차지 않으면 자기 혼자나 가족과 이웃이 모여 일년중 어느날을 법의 날로 정해 조촐한 기념식을 갖고, 법을 어겼을지도 모를 자신을 질책하거나 고지식하게 법을 지켜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이웃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

행여 '이 땅에 언제 법치가 구현된 적이 있었나', '법률가의 세계는 너무 멀고 실정법의 세계는 너무 지루하고 번잡하다'는 실망감에 젖거나 '법보다 빠르고 강한 무기가 있다'는 오만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생각에 법을 무시한 채 법을 통하지 않고 보다 쉬울 것 같은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결국 원하지 않는 대가를 스스로 치르게 되는 것은 물론 법에 의한 지배가 더욱 멀어져 이웃과의 연대가 파괴되고 만다는 점을 '법의 날'에 공유할수 있었으면 한다.

진철(대구지방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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