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

문화사적으로 진경(眞景)시대로 불린 18세기 조선. 학자들은 이 시기를 '문화국가의 조선의 최전성기'라고 평가한다. 특히 정조 통치기인 18세기 후반은 조선중화사상이 완결된 동시에 '북학론' 등 새로운 시대의 사상이 대두되는 변혁기였다.

정조(正祖). 1776년 25세로 왕위에 올라 1800년 서거하기까지 뛰어난 학문적 능력과 군주로서의 자질을 토대로 급격한 시대변화와 정치적 혼란을 극복해낸 인물이다.

이런 업적은 그를 조선후기 최고의 군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최고 통치자의 이상형으로서 정조와 그의 시대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70년대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실학과 북학사상, 탕평책, 학예사상, 규장각중심의 문화정책 수립과정, 문신재교육 제도인 초계(抄啓)문신제, 화성 신도시건설 등….

내년 정조 서거 200주년을 앞두고 서울대 정옥자교수 등 5명의 중진, 소장학자들이 쓴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돌베개 펴냄)는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

왜 정조이며, 과연 정조시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흔히 조선 전기는 '세종', 후기는 '정조'를 손꼽는다. 세종은 학술연구기관이자 정책수립기관으로 '집현전'을 설치했고 정조는 '규장각'을 세운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정조는 스스로 임금이자 스승인 '군사(軍師)'를 자부할만큼 많은 글을 써 '홍재전서'라는 개인문집까지 남겼다. 이같은 인물이라면 연구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이 연구서는 바로 정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다.

이 책에 실린 각 연구주제를 보면 먼저 정조의 통치철학을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검증한 것이 눈에 띈다. 의리와 명분으로 백성을 설득하고 관료 조직내 언관을 두어 정화작업을 꾀하는 등 언론의 활성화를 위해 정조가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정조의 '탕평논리'를 통해본 정치사상 연구도 포함돼 있고 규장각에서 수행된 '주자서' 편찬사업의 실상과 의미도 추적했다. 정치권의 핵심문제로 부상한 '서학(西學)'과 '서기(西器)'의 평가와 수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통해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에게 나타난 가치관의 변화와 문화사상사적 흐름을 짚어보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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