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옷로비 의혹사건의 규명과 관련하여 청문회가 다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에게 청문회는 5공 청산과 관련하여 강하게 인상지어져 있다. 청문회는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유명무실했던 의회가 제 기능을 회복했음을 보여주었던 상징적 사건이었다. 또한 의정활동에 대한 생중계를 꺼려하는 우리의 정치풍토에서 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의 사태규명 능력과 행태를 감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청문회가 지금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흥청망청 놀아난 고관부인들의 작태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고, 로비 의혹의 실체규명과 검찰 조작수사의 진위를 밝히는데 실패한 국회의원들의 무능력과 당리당략에 따른 노골적 편들기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시민들의 이런 상이한 반응 양태는 새로울 것도 없다. 이것은 우리가 권력과 연계된 비리에 부딪혔을 때 항상 나타내온 행동양태이기 때문이다. 단지 전면에 나타난 공격대상이 정치인이니 고위 공직자, 재벌이 아니라 그들의 부인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옷로비 의혹사건은 처음부터 현정권과 연계되어 도덕성 문제로 비화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법적으로 보면 옷값을 지불한 사람도 없고 옷도 되돌려졌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정치문제와 엉켜있는 권력형 비리는 그와 상관없이 권력자에게 의혹의 눈길을 던지게 만든다.
구속된 재벌총수와 수사를 맡은 검찰총장간의 뒷거래는 우리에게 도덕적 의분을 느끼고 화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도덕적인 문제제기의 가장 극적인 형태는 역시 추문을 들추어 내는 것이다. 사과상자나 골프가방에 몇십억이 넣어져 정치비자금으로 넘겨지는 것 보다 몇백만원의 옷값에 시민들이 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후자가 추문의 치사한 요소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위층 부인과 옷, 사치, 허영, 대리인을 내세운 뒷거래 등등.
그러나 '네 여인의 거짓말'이 문제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치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증인들이 진술하는 과정에서 상반되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청문회는 바로 그 속임수를 폭로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오히려 자료제출을 거부하여 함량미달의 청문회를 만들어 버린 정부와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무능한 국회의원들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내년 총선에서 이들을 심판하지 못한다면 이런 한심한 작태가 또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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