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수 있었던 여덟살 여자 아이가, 추운 겨울 놀이로 가슴이 따뜻해졌던 연탄집게 파마가 있었기에 동네 언니들과 또래에게 우상이었던 시절이 내게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심심하지 않게 놀잇감을 제공해 주어 더욱 신날 수 있었습니다. 손을 호호 불어 가며 구슬치기를 하던 남동생들도, 깡통에 쌀을 넣고 개울가 둑에서 나뭇가지 모아 불을 지펴 쌀을 볶아 먹던 여동생도, 내가 하는 미장원 놀이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인기가 있었습니다. 철물점과 목공소를 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망가진 연탄집게 한 짝과 큰 못으로, 머리가 길다는 이유만으로 모델이 되버린 금실이를 앉혀놓고 아교를 접합제로 사용하기 위해 커다란 깡통이 항상 연탄화덕에 올려져 있었기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집게와 큰 못을 연탄위에 올려놓고 달구어 지길 기다리면서 자연스레 구멍이 19개란 것도 그 때 알았습니다. 회색빛이 돌던 연탄집게 한 짝과 못이 부끄럼타는 아이의 볼보다 더 빨개 졌을때 물담긴 그릇에 한 번 '칙'소리 나게 담근 후 얼른 꺼내어 가리마 정수리 부분의 머리를 손가락 두께 만큼 잡아 돌돌 나선형으로 말아 잠시 후 풀면, 냇가에서 잡아 된장에 삶아먹던 다슬기 몸처럼 보기 좋게 웨이브가 생기는 게 신기해서 우리 모두는 이 놀이에 푹 빠졌습니다.
금실이는 어느새 텔레비전 화면에서 나오는 인기가수 처럼 멋지게 변했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놓고 난, 주인이고 손님은 자기들인양 진풍경은 계속되었습니다. 세 명쯤 마무리 할 때, 코끝을 스치는 화학섬유 냄새가 느껴지길래 살펴보니 엄마가 털실로 예쁘게 떠주신 바지 왼쪽 무릎부분이 바람빠진 공처럼 탄력없게 엉키어 화덕몸통에서 지글지글 대면서 타고 있었습니다. 화상 입은 무릎보다 구멍난 바지가 걱정이 되어 더 이상 미장원 놀이는 할 수가 없어 끝내고 모든 증거를 없애기로, 아니 없애야만 했습니다. 재활용처리가 잘 안 되었던 그 때는 집집마다 불을 땔 수 있는 큰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새까맣고 커다란 가마솥을 얹어 놓은 아궁이에 망가진 연탄집게와 큰 못을 던져 넣은 후 목공소에서 나온 톱밥과 대패질에 깎여나온 나무껍질을 많이도 태웠습니다. 화기로 인해 데웠던 무릎이 화끈거려 용수철 튕기듯 나와 뜰안에 나오니 밖은 어느 새 소리 없이 내린 하얀 천사옷 같은 함박눈이 내려 장독대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순간, 눈을 발라보면 시원할 거라는 생각으로 발로 살금살금 도둑고양이 처럼 장독대 계단을 밟아 우리 집의 제일 높은 곳 이층옥상을 향하여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처럼 멋있게 한껏 포즈를 취해 무릎을 대고 누웠습니다. 배 깔고 코 박고 그대로 5분쯤 있으려니 시원하기는커녕 아픔은 더 했습니다. 놀라 일어나 보니 상처에서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생채기만 더 만든 셈이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알릴 수도 없어서 가슴앓이를 한창이나 했습니다. 혼날까봐 겁이나서 치료를 제 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작 할 수 있었던 자가 치료는 옥도정기이었고 내복에 약이 묻을까봐 막내동생 기저귀를 사용할 만큼 잘라내어 상처를 치료해야만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미장원놀이 할 때 언니와 동생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그 때는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습니다. 상처 또한 아물기 시작했고 왼쪽무릎의 상처는 비밀을 간직한 채 가끔씩 동심으로 나래를 펼 수 있게 동행자가 되어주곤 합니다. 서른여덟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리움은 아름답기만 합니다.하지만 내게도 완전범죄는 용납치 않았습니다. 쉴새없이 나무와 톱밥을 먹어 대던 아궁이란 놈이 모든 진실을 밝힌 겁니다. 과한 불로 인해 장판 깔린 아랫목이 시커멓게 탄 것 뿐만 아니라 쉽게 식지 말라고 덮어 놓은 장미꽃이 예뻤던, 비싼 밍크 담요마저 태우고 말았습니다. 하마터면 불이 날 뻔한 게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뒤늦게 발견한 아버지께서도 화가 많이 나신 목소리로 범인 찾는 형사가 되어 무서운 눈초리로 찾고 계셨습니다. 짖꿎었던 남동생들을 의심하셨는데 상황은 전혀 예상과 다르게 흐르고 있던중 가수처럼 예쁘게 퍼마했던 금실이가 놀러와선 나를 찾고 있었습니다.
"혜성아! 우리 엄마가 너 오래" 앞이 깜깜해지는데 또다시 말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다 타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다시는 이런 장난 하지 말래'아마 혼내주려고 날 부르러온 모양입니다. 겁이나서 엉엉 소리내어 울며 아버지께 모든 사실을 다 말씀드려야 했습니다. 생각보다 아버지께선 야단치시지 않고 조용하게 타이르셨습니다. 이때까지 말썽 한 번 피우지 않던 얌전한 딸이었기에 특혜가 주어진 셈이었습니다. 냄새나는 회색빛 연고로 다시금 내 왼쪽 무릎은 호사스런 마무리 치료를 받고 나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으로 치유된셈이었습니다. 혼자 해결하겠다고 하얀눈이 소복히 내린 옥상 위에 배깔고 누웠던 그 시절이 해마다 색다르게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때묻지 않았던 순수한 시절에 걱정없이 그 일에 열심이었던 그 해 겨울은 가장 추우면서도 가슴이 따뜻했던 계절이 되고 있습니다. 모델이 되어 주었던 금실이도 아이들 엄마가 되어 그 때를 기억해 낼는지 궁금해 집니다. 두아이의 엄마와 사랑이주는 영원한 동반자인 내 짝이 옆에 있어 너무 의미있는 날들로만 살아가는 것이 때론 버거워질 때 툭툭 털어내고 목을 굴리던 어줍잖던 여덟살 계집아이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날이면 행선지 없는 이방인처럼 정해지지 않은 짜릿한 경험을 해 보렵니다. 아마 내 딸아이도 이런 엄마처럼 닮아 간다면 이젠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내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해주려는지 눈내리는 겨울이 오기 전 행복한 숙제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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