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도 얻고 평수까지 늘린다던 재건축사업.
95년까지 대구 곳곳에서 붐이 일 정도였으나 외환위기 2년을 거치면서 재건축 현장은 거의 사라졌다. 대구시로부터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사업 추진에 나서지 못한 현장이 18개에 이른다. 대구 최대 단지라는 황금아파트는 조합 설립 인가조차 받지 못한 상태다.
사업이 구체화된 현장도 시공회사가 바뀌거나 조합원 내분으로 재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다 건설회사들이 재건축을 꺼리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재건축 사업에 나섰다가 기업 이미지만 버린다'는 시각 때문이다. 재건축에 나섰던 건설업체들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다.
재건축 사업지역의 현황과 문제점, 해결방안 등을 알아본다.
◇현 황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라면 70년에 완공된 신암아파트(671가구)를 꼽는다. 재건축 대상 1호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614명의 조합원이 97년 조합설립 인가를 받고 사업을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진척이 없다. 화성산업이 손을 댔다가 낭패를 봤고 이어서 대우가 나섰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현대는 조합과 계약단계에 이르렀다가 외환위기를 맞은 뒤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내당주공아파트(930가구) 재건축조합은 96년 대림산업을 시공회사로 결정한 뒤 98년 터파기 공사를 마쳤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추가비용이 발생해 시공사와 조합이 갈등을 빚다가 공사가 중단됐다. 우여곡절 끝에 신임 조합 집행부가 구성돼 부산업체인 삼정건설이 대림에 이어 공사를 맡기로 한 상태다.
재건축 사업의 대표적 실패 현장은 효목동 주공아파트(1천200여가구)다. 시공회사 보성의 부도로 2년동안 공사가 중단돼 있다. 공사비 추가 부담 문제로 조합원과 회사가 갈등을 빚은 채 해를 넘기고 있다. 조합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행정기관에 탄원을 하기도 하고 시위도 벌였지만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공사 중단에 따른 입주예정자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공회사도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며 조합원이 추가 부담해주길 바라고 있다.
대구 최대 단지인 황금아파트 재건축 사업도 조합원 내분, 추진위원회 대표성 등 복잡한 내부 문제로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합 설립을 위해 추진위원회가 주민 동의를 받고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그나마 황금아파트는 아직까지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주민 의견이 하나로 모이면 재건축이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걸 수 있다. 내년 초 조합이 설립될 경우에도 교통영향평가(7~8개월), 이주(10개월) 등을 거쳐 완공까지는 빨라도 4년이 걸린다.
이밖에도 해바라기, 장미, 큰고개, 월송상록 등 18개 현장이 재건축 조합을 만들어놓고 시공사 선정을 바라지만 뚜렷한 진척이 없다. 다만 대공원아파트(400가구)가 최근 재건축을 위해 우방과 협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문제점
재건축이 제대로 되는 곳도 없지만 이미 재건축한 아파트도 '집을 잘 지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드물다. 95년까지 건설업체들의 '말뚝박기식' 출혈경쟁은 재건축이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편견을 낳았다. 재건축이 예상되는 아파트의 거래가격이 치솟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업에 들어간 업체들은 손해를 줄이기 위해 아파트 건축비를 줄였다. 주거 환경을 생각하기보다 용적률 높이기에 나서다보니 질 높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 이전 사업 확장용으로 재건축에 나섰던 건설업체들은 이득을 위해 조합 간부를 매수하기도 했다.
재건축을 어렵게 하는 것은 과당 경쟁을 주도한 건설업체에 1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주민들의 지나친 '욕심'이 화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이주 기간을 지키지 않아 금융비용 손실을 부르거나 끝까지 남아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개발이익을 위해서는 공공 시설물 부지를 내줘야 하는데도 평형만 넓히는데 관심을 쏟았다. 주민들은 새 아파트 완공 이후의 가치보다 대물 보상 규정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사업자를 선정했다.
실제 지역 한 재건축 현장은 조합원과 합의한 대물보상 규정을 지킬 경우 평당 건축비로 110만~120만원을 쓸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지역 1군 건설업체가 도심에 아파트를 지을 경우 최소 평당 160만원 이상을 들인다. 아파트가 괜찮다고 평가받는 곳은 보통 190만원을 넘어선다.
대물 보상이 적더라도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는 탓이다. 이같은 경향은 시공회사와 주민들이 져야할 부담으로 고스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조합을 만들어 놓고도 주민들이 조합 대표를 신뢰하지 않아 불신임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재건축 예상 아파트가 막대한 이익을 남길 것이라는 편견은 결국 조합을 서로 장악하려는 주민들의 내분으로 이어졌다.
◇해결방안
90년 이후 비정상적인 재건축 붐으로 건설업체와 입주자 모두 피해를 봤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업체가 먼저 재건축에 등을 돌렸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보상 조건으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방에는 올들어 대구경북에서 50건의 재건축 문의가 들어왔지만 계약에 이른 경우는 한 건도 없다. 화성산업에도 20여건이 들어왔지만 원칙적으로 재건축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을 정도다. 몇년 전까지 재건축을 위해 건설업체가 조합을 찾아다니던 것이 요즘은 조합이 업체에 사정을 해야 할 형편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유리한 대물보상 조건을 따져 합의에 이르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우방 민수1팀 조인호 과장은 "재건축으로 막대한 이익을 기대하는 인식을 주민들이 시급하게 바꿔야 한다"며 "건설업체도 4~5년 전처럼 실적 위주의 경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한한 재건축에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재건축 조합의 공정 운영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의사 결정 과정의 투명성, 사업 진행 상황의 공개, 조합 및 입주민 신뢰 회복 등이 과제로 남는다. 이를 위한 행정기관의 적극적인 중재가 절실한 시점이다.
지역에서 재건축 성공 사례를 낳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일치된 의견을 갖고 고품질 아파트를 짓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시공회사에는 적정 이윤을 보장해 준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조합의 투명한 운영을 통해 얼마든지 감시할 수 있다.
눈 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면 주민, 업체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재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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