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99 송년특집 특별대담-일 경제학자가 보는 한국경제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게이오대학 교수

◇경력

△도쿄(東京)대학 경제학과 졸

△미국 미시간대학 경제학 박사

△대장성 재무관('미스터 엔'이란 별칭 얻음)

△게이오(慶應)대학 교수

△IMF 차기 총재후보로 거론 중

◇저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일본

△진보주의와의 결별

△그외 국제경제관계 논문 다수.

-엔고에 대한 논의가 일본내에서도 활발한데, 적정환율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달러당 100엔대가 무너지는 엔고 행진은 세계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위험이 있다. 지나친 엔고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에 투자된 막대한 해외자본의 가치가 하락하면 뉴욕증시에 위기가 올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파동이 올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IMF의 구조개혁이 필요하지 않은가.

▲구미(歐美)식 정책방향을 전통과 가치가 다른 나라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은행(IBRD)은 지역 담당 책임자를 두어 특성에 맡게 투자.지원하고 있다. IMF도 지역화돼야 하며 특성에 맞게 조직의 실용성,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한국에 대한 IMF의 조치가 특성을 무시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통화량을 줄이고 환율을 자율화하고 금리를 30%대까지 올려서 외국자본을 급속히 유입시키는 조치는 너무 교조적이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한국은 순간적인 유동성 위기를 맞았지만 수출구조 등 경제기반이 인도네시아와는 비할 수 없이 탄탄하다. 똑같이 대응한 것은 무리였다. IMF를 주도하는 통화주의자들 때문이다.

-97년 9월22일 홍콩의 IMF 총회때 국제자본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를 만난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대화내용은.

▲당시 그가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은행 중 가장 위험한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이 어느 나라 은행인지 아느냐'고 묻더니 '한국의 은행들'이라고 했다. 조사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그 후 한국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그가 불을 지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국제시장 전체가'한국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공격을 당했다.

-96년의 한국 OECD가입이 위기를 촉발, 가중시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준비가 부족한 나라들에게 자본거래 자유화를 지나치게 빨리 추진하도록 강제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위기를 불러 온 면이 있다. 90년대 전반기'글로벌 자본주의'분위기 속에서 한국도 외자 유입으로 자금이 흘러 넘쳐 거품이 형성되고 투기가 발생했으며 부실 채권을 만들어 냈다. 자본자유화 조치에는 자본의 유출.입을 점검할 금융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했다. 여기에 한국의 은행들이 국외에서 차입한 단기자금을 인도네시아 등에 장기로 빌려준 것이 더욱 사태를 악화시켰다.

-위기직전인 97년 10~11월에 한국은 일본 정부에 단기 자금의 회수를 늦추어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한 이유는.

▲경위가 잘못 알려졌다. 8~10월에 미국과 유럽은행들이 한국에 대한 단기자금을 회수하거나 대출한도를 줄이기 시작해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줄어 들었기 때문에 일본이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이 위기가 심각해 졌다. 11월 들어서는 이미 일본의 100억 달러 정도 지원으로도 사태가 진정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돼 있는 것은 국제 금융시스템의 모순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가로 순채무가 1조5천억달러에 이른다. 오히려 최대 채무국이기 때문에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0년대 이후 채권국은 독일과 일본으로 바뀌었다. 국제 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자국 금융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그 준비가 독일과 일본엔 없었다. 그러나 기축통화가 곧 달러라는 현상은 유로 화(貨)의 출현으로 재고되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채권국으로서 일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채권국으로서의 우위성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에 기여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전략적 과제다. 먼저 도쿄시장을 완전 개방하고 엔의 국제화를 추진해야 한다. 금융 자유화 이후 해외자금의 부당한 주식거래 등이 횡행하고 있지만 이를 규제, 동결해서는 안된다. 자유화가 뒤늦은 데서 오는 부작용이지 빨라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업무를 두가지로 나누어야 한다. 국제적인 업무를 포함, 대기업을 상대로 증권.투자.파생상품을 취급해야 하고 철저하게 지역 기업에 대출하는 '큰 지역 은행'이 돼야 한다. 이런 빅뱅을 실천해 내면 엔의 국제적 신뢰와 힘이 축척되고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규제는 미국과 유럽의 일본은행 위협용이라고 밝힌 바도 있는데.

▲구미세력이 일본은행의 국제시장 점유율을 떨어뜨리기 위한 조치라는 면이 분명히 있다. 10년전부터 해외진출을 확대한 일본 은행들은 오로지 시장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해 왔다. 점유율의 상당부분을 잃게 된 구미국가 은행들이 반격의 기회를 기다렸다가 BIS규제를 만들자고 합의해 시행한 것으로 위기감에서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본다. 도대체 은행 8%, 투자회사 4%란 기준이 어떤 근거인지 의문이다. 한국도 꼼짝없이 BIS규제에 묶여 있는데 불합리한 점이 많다. 재고돼야 한다.

-무분별한 횡포를 부리는 구미의 국제투기자본으로부터 아시아권이 단결하여 대항할 방안이 없는지.

▲엔이 국제기축통화로 발돋움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당장은 어렵고 AMF(아시아통화기금)같은 조직을 모색해 봐야 할 단계이다. 아세안.일.한.중이 역내에서 활동하는 국제단기자금의 흐름을 공동으로 감시, 통제하고 달러.유로에 대항해 가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유로화가 출범했으므로 공론화 할 시점이라고 본다.

-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설치도 제창했는데.

▲동아시아 일.한.중 3국부터라도 자유무역 협정에 대한 논의를 개시하고 우선 일.한 양국이 무역자유화의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일.한간 수평적 분업이 가능한 부분부터 과감한 자유화 조치를 해가는 것이 양국간에 도움이 될 것이다. 21세기 초반에 동아시아의 시대, 새로운 경제 기적의 틀을 만들어 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외환거래세제(Tobin Tax)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단기자본의 이동을 감시할 방안으로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 인터넷 거래가 늘어나고 있고 해외 현지금융이 활발한데 이를 점검할 특별한 장치가 마련돼야 외환거래세제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우선 아시아권부터 각국의 중앙은행이 협조하여 공통의 규범을 제정해 가는 작업을 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계적 외환위기 발생가능성과 예방책은.

▲정보통신의 혁명으로 국제자금의 흐름이 신속하고 한꺼번에 1천억~2천억 달러씩 움직이는 양적 팽창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불안요소는 늘어가고 있다. 위기방지구조가 대단히 부족한 것이 불안요소를 증가시키고 있다. 부득이 지역별 방어체제를 세울 수 밖에 없다. 우선 아시아권, 더 좁혀 동아시아권이라도 가능한 규범을 만들고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사이버 금융, 사이버 자본주의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제는 장소.시간의 제약없이 같은 시각, 전지구적으로 동시 거래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그것이 사이버 금융이고 20세기 초에는 상상도 못한 자본주의의 변화다. 미국에서 정보혁명이 급속히 진행된 것은 최근 5, 6년의 일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정보기술의 영향에 대한 신중론이 많았다. 나도 2, 3년 전에는 인터넷에 의한 금융거래 등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지금 경제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실감한다.

-일본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80년대 말의 거품경제가 사그러들면서 부실채권이 늘고 부실자산이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일부는 공적자금도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융기관이 자각해서 사이버시대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일본의 인터넷 비즈니스의 성장속도는.

▲인터넷에 대해 일본은 미.유럽에는 없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은 중산계급 사회고 평등사회이기도 하다. 반면 미.유럽은 계급사회다. 인터넷은 평평한 중산층 계급사회와 잘 맞는다. 잠재적 인터넷 인구가 그만큼 많다. 둘째 기술의 발전이 빠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다시 한 번 미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해서 특별한 집념을 갖고 그 보호를 주장하고 있는데.

▲각 국가가 역사.문화적으로 축적해 온 바탕이 다른 만큼 구미의 사고와 이념으로 일률적으로 세계경제질서를 세울 수 없다고 본다. 어떻든 일본의 노동시장의 경우 블루칼라 계층의 종신고용제.연공서열제는 고용시장 안정과 기술발전에 도움이 되는 제도이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즉 독자성도 존중돼야 한다.

정리=李東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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