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대학사회의 후진성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후진성이 IMF를 겪으면서 많이 극복되었다고 하면 조금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각 분야가 한국적인 구조를 벗어나서 뭔가 국제적인 구조로 바뀐 것이다.

온 나라가 국제구제금융기간 동안 생몸살을 하면서 구조조정을 했다. 즉 한국적인 것을 벗어던지고 국제적인 것으로 새 단장을 했다. 그러나 대학만이 유일하게 국제구제금융기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은 듯 하다. 나라가 당하고 있었던 외환난의 바로 해당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교수는 구태의연한 한국적 대학구조의 조정의 결과로서는 해직당하는 법이 없다는 뜻이다. 서울대학교 김민수교수의 해직은 국제적인 안목의 구조조정의 결과가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대학구조 즉 동종동학(同種同學)의 학문적인 예속과 학과의 인화를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교수간의 위계질서에 의한 복종적인 인간관계의 결과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교수간의 위계질서란 도제식 교육에 의한 사제지간과 동아리적 교육집단 속에서의 선후배지간 등에 의해서 주로 형성된다. 간혹 지역적인 감정이 작용하는 수도 적지 않다.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자기 출신지역의 학자들만 계속 초빙하고, 여기에 대학당국이 간섭하면 강력반발하는 등의 행태를 말함이다.

1975년에 채택된 교수기간제 임용제도는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교수신분에 관한 법률적인 장치인데, 이 제도 자체가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교수들을 쫓아내기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내의 유신, 즉 한국적 대학구조에 저항하는 교수들을 솎아내는데 악용되어 왔다. 이 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해고된 300명이 넘는 교수들은 전부 품위가 없다, 학내 데모를 선동하였다, 인간관계가 나쁘다, 심지어 통근버스 속에서 원로교수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인사도 않는다 등 그야말로 한국적인 가치척도에 따라 해고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가 쓰는 논문의 질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해직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말만 잘 듣고 고분고분하기만 하면 절대로 쫓아내는 법은 없었다. 온종일 연구실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교수가 없나, 수업시간마다 자신이 간부로 있는 어느 특정 종교집단의 신앙강좌를 하는 교수가 없나, 난치병에 걸리면 5년이고 10년이고 강사나 조교가 대강(代講)하고 막상 본인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그런 사회가 한국의 대학사회이다. 인정사회이고 격동하는 현대사회에서 유리된 사회이고 그러기에 후진사회이다.

어느 교수가 한국의 대학이 한국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대학망국론을 부르짖은 적이 있는데, 필자도 어느 면 동의하는 바다. 한국 대학의 영문과 교수들로서는 토익강의를 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어느 대학에서도 토익강좌는 전문 학원강사가 맡고 있다. 자기 대학의 영문과 교수가 토익 특강을 맡기에는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가서 7, 8년 공부해 가지고는 학생들에게 성공적인 토익강의를 할 수 없다. 자신이 텔리비전의 코미디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미국유학을 가면 더 불리하다는 말도 있다. 국내 대학원에서 힘있는 교수 밑에서 오만가지 힘든 일을 도와드리면서 인간적으로 신임을 얻으면 그것이 훨씬 더 빠른 길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양성된 학자가 국제적인 학자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현실은 국내파가 훨씬 더 유리한데 어쩔 셈인가. 자기 사람을 심어 별 것도 아닌 자기 학문을 세습시키고, 정년 후에도 학과에 자기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런 한국적인 대학구조가 가시지 않으면 우리 대학은 백년하청이다. 김민수교수는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대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대학교수의 임용과 승진 등 신분에 관한 문제는 법률화하여, 중고등학교 교사의 임용시처럼 임용고사나 자격제도를 확립하여 국가가 간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아그레가시옹(Agregation)제도와 미국의 테뉴어(Tenure)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아그레가시옹제도란 대학교수 후보를 국가에서 시험을 보아 뽑는 제도이다. 교수자격고사이다. 테뉴어제도란 우리나라 같은 변질된 교수기간신분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학문적인 업적에 의한 교수의 직급에 따른 임용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수가 된다고 말하지만, 미국에서는 어느 대학에서 부교수, 조교수로 몇 년간 강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엔간한 교수는 정년보장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선 어느 학생이 대학에서 올A를 받고 졸업하였다고 하여 그 학생에게 사회진출의 어떤 메리트가 가해지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 학생은 대학교육과는 무관하게 학원에 가서 사회진출의 준비를 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를 지도하는 스탠포드대학을 생각해 보자. 우리들의 대학이 복종적이고 동종혈연파적인 학자들로 메꾸어질 때 그 피해자는 과연 누구이겠는가.

단국대 불문과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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