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민·학생·유림 등 만세운동 참여 한마음

3·1 운동과 파리장서사건 등에 연루된 독립운동가 117명의 대구교도소 수감당시 인적사항과 행적 등을 기록한 재소자 신분카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지 못한 농민, 유생 등 50여명이 포함돼 있어 3·1 운동을 전후한 독립운동사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됐다.

행정자치부 정부기록보존소(소장 남효채)가 최근 대구교도소에서 수집·발굴해 29일 공개한 이 신분카드에는 1919년 당시 대구감옥에 수감돼 있던 독립운동가 117명의 신상을 자세히 기록한 명적표(名籍表), 신상표, 작업표, 시찰표(심문조서), 접견표(가족면회내용), 신체특징표 등 각종 서류가 첨부돼 있다.

이중에는 영남의 대표적 유학자 곽종석(郭鍾錫)과 충남 홍성 교임(校任) 안병찬(安炳瓚), 청양 유생 임한주(林翰周) 등 1919년 파리장서사건에 연루된 유림들의 당시 신상기록도 포함됐다.

파리장서사건은 1919년 3·1운동후 영남과 기호 유림 134명이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장문의 서한을 작성,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을 통해 파리강화회의에 전달한 사건으로 같은해 4월 경북 성주 만세시위운동 당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관계자들이 옥고를 치렀다.

이와 함께 공개된 신상카드에는 당시 독립운동가중 알려진 명망가들뿐아니라 3·1운동 당시 경북 성주와 군산 영명(永明)학교 만세사건 등에 연루된 농민이나 10대학생 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던 독립운동가 50여명의 신원이 밝혀지게 됐다.

한편 117명의 직업으로는 농민이 67명으로 가장 많았는데 이들중 55명이 평민, 양반이 7명이었고 나머지 5명의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다.

경북 성주나 전북 군산 등지에서 만세운동에 가담한 학생은 모두 19명이었으며△병원 사무원 5명 △잡화상 4명 △승려와 재봉직·직물직 종사자가 각 2명씩이고 무직자가 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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