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홍명희 문학비 복원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 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벽초(碧初) 홍명희(洪命憙.1888~1968)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실제 그의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은 조선시대 하층민의 저항과 생생한 삶의 묘사를 통해 근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을 제시했으며, 다양한 서사적 기법과 풍부한 토속어 구사로 '조선어의 광맥'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벽초는 이 단 한 작품만으로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와 함께 신문학의 3대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1948년 월북해서 타계하기까지 부총리 등을 지낸 탓에 문학적.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왔다. 그러다 지난 87년 정부의 납.월북 작가 해금 조치로 '임꺽정'이 전 10권으로 출간되면서 명실공히 근대소설의 대표작으로 새롭게 자리매김, '은밀한 읽기'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그의 복원은 그 이후에도 순탄하지 않았다. 1996년 그의 30주기를 맞으면서부터 충북 괴산에서 매년 '홍명희 문학제'가 열리고, 98년에는 향리인 제월리에 문학비가 건립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훈단체들이 비문 내용에 월북한 사실이 포함되지 않고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이유로 거세게 반발, 건립 7개월만에 문학비가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에 따라 다시 그의 문학비가 같은 자리에 세워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상이군경회 괴산지회와 재향군인회 등 4개 보훈단체는 12일 벽초문학비 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도종환)와 문제가 됐던 월북 행적 등의 내용을 보완한 문학비를 오는 10월에 복원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제 해방 후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학적 업적마저 기피의 대상이 됐던 벽초가 우리 앞에 되살아나게 됐다. 벽초의 삶의 복원을 통해 격동기 우리 역사의 한 공백이 메워지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를 계기로 두 동강난 문학사가 완벽하게 복원되고, 분단의 비극이 극복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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