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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속의 대구 문화예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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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아픔에서도 50년대 대구연극은 황금기였다."6·25는 민족적 비극이지만 전국의 연극인들이 대구에 집결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때나마 대구가 우리나라 무대예술의 중심에 서기까지 했다"고 연출가 이필동씨(경주문화엑스포 기획실장)는 말했다.

당시 단칸방 신세의 시민들은 향촌동 대포집과 키네마극장(현 한일극장)에서 고단한 피란살이의 애환을 달랬다.

수많은 피란민들이 대구에 힘겨운 피란살림을 풀 때 서울 연극도 대구에 둥지를 틀었다. 극단 신협이 대구에 내려온 것도 1·4 후퇴 때. 신협은 키네마극장을 중심으로 '원술랑''자명고'를 비롯해 많은 연극을 공연했다. '마의태자''맹진사댁 경사' 등 창작극뿐 아니라 '햄릿''맥베드''오델로'와 같은 세익스피어 연극에 '빌헬름 텔''붉은 장갑' 같은 번역극에까지 레퍼토리도 다양했다.

대구 출신으로 한국연극계의 태두였던 홍해성의 주도로 불교극 '팔상록''거연''불타는 연대기'가 공연됐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문인극 '고향 사람들'은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고향 사람들'에는 김팔봉, 정비석, 유주현, 곽하신, 최인욱 등 당대의 기라성같은 문인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북한을 탈출한 예술가 조직인 신극협회도 극장뿐 아니라 대구역 광장, 칠성시장, 서문시장, 염매시장 등을 돌며 연극을 통해 선무 활동을 벌였으며 상업극단들도 활발한 공연을 벌였다.

'꿈속의 사랑''만고의 사랑' 등의 상업공연에는 김승호 김희갑 장동휘 문정숙 같은 은막의 스타들도 참가해 피란민들에게 잠시나마 전쟁의 참상을 잊게 했다.

특히 서울의 중앙국립극장이 53년 2월 문화극장(전 키네마극장)을 인수해 4년 4개월 동안 대구에 머물면서 대구에 본격적인 연극운동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국립극장은 경북 학생예술제를 비롯해 고등학생들의 연극까지 공연하는 등 대구 무대예술 발전에 큰 공적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당시 극장장인 연극계의 원로 서항석이 세운 '영남연극회'. 향토출신 권혁진 이상언 김산운 김대한 김시현 등이 참여한 영남연극회는 '인형의 집''양자강의 애화' 등을 공연하며 향토의 젊은 연극인을 배출하는 밑거름이 됐다.

대학극 활동도 활발해 대구대학(영남대 전신)에서는 유치진의 '별'(방훈 연출)과 '개골산'(최현민 연출) 등을 공연했고, 청구대학에서는 역시 유치진의 작품인 '조국'(유일수 연출)을 국립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金重基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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