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근로자-마르코스 유키노의 코리안 드림

지난 5월 현재 국내에 체류중인 외국인 근로자는 모두 24만 3천 363명. 이들 중 63.2%인 15만 3천 879명이 불법 체류자.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들은 이 나라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는 이웃이다. 날이 갈수록 한국인을 닮아 가는 외국인 근로자들. 그들을 만났다.

97년 11월 웃자란 겨울바람이 그악스레 몰아치던 날, 마르코스 유키노(30)는 그토록 고대했던 동쪽의 부자나라 한국 땅을 밟았다. 얄팍한 나무토막에 몸뚱이를 의지한 채 육지를 찾아 떠도는 사람처럼 얼굴도 모르는 에이전시에게 자신을 맡긴 채 5개월을 보낸 뒤였다.

그에게 태어나고 자란 필리핀은 별 희망이 없었다. 5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겨우 얻었던 건축 회사 설계 담당자의 월급은 고작 한화 30만원. 부모님과 두 동생, 아내를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호텔 요리사인 형은 20만원의 월급으로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는 일에도 버거워했다.

마르코스가 한국에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을 때 그의 부모님들은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비록 아들이 몹시 위험한 프레스 기사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고 부자 나라에서 선진문물을 배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굉음을 내며 달아나는 자동차, 금방이라도 구름 속 너머로 사라지고 말 것처럼 우뚝 솟은 빌딩, 한눈에 보기에도 때깔 좋은 양복들, 넥타이들, 짧은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우윳빛 피부. 마르코스에게 한국은 판타지 영화같은 나라다.

대구 성서 공단의 한 농기구 생산 공장에서 철판을 자르는 마르코스. 그는 야간근무를 하고 싶다. 주간 근무는 56만원의 월급이 고작이지만 야간근무를 하면 7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잔업도 많이 하고 싶다. 퇴근 시간이 됐다고 기숙사로 내모는 공장장이 밉다. 돈을 벌기 위해 여기에 왔을 뿐 선진국가의 근로기준법 따위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생활은 즐겁다. 틈틈이 낚시와 전자 오락을 즐겼고 술 마시고 노래도 불렀다. 친구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11월이면 필리핀으로 돌아가야 한다. 벌써 2년의 연수 기간은 끝났고 덤으로 얻은 1년의 취업 기간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에 심하게 다친 오른 손은 벌써 3번의 수술을 했지만 온전치가 않다. 공장장님은 9월 달에 다시 한번 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제대로 손가락을 쓸 수 있다고.

일을 할 수 없으니 기숙사에서 종일 빈둥대는 게 고작이다. 수당은 매월 6만원.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은 왜 돈을 보내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기계가 뿜어대는 굉음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마르코스. 그는 등이 휠 만큼 많은 돈을 짊어지고 고향집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러나 허락만 해준다면 영원히 한국에 남고 싶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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