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15상봉-방문단 사흘째 표정

0…서울 방문 3일째인 17일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은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족들과의 마지막 상봉을 가졌다.

북측 이산가족들은 전날 밤늦게까지 같은 방의 동료단원과 가족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잔 탓인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으나 이틀간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한 만족감에 젖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가족들과의 이날 만남을 끝으로 내일이면 다시 가족들과 헤어져 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인지 벌써부터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특히 몸이 아픈 노모와 아직까지 만나지 못한 양한성(69)씨를 비롯, 상봉인원제한 때문에 다른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일부 방문단원들은 '오늘이 마지막 기회인데'라며 애타는 모습을 보여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아침메뉴는 꼬리곰탕, 옥도미구이, 인절미, 수정과 등 한식이 제공됐으며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음식을 남기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오경수(70)씨는 "이틀동안 가족을 만나서 기쁘지만 매부 등 다른 친척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며 "내일이면 다시 가족들과 헤어져야 한다니 시간이 남녘 땅에서 유독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며 너무나 아쉬운 표정이었다.

북의 화가 정창모(68)씨는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어서인지 심장이 더욱 세차게 박동한다"며 가볍게 농담을 던졌으나 이내 "그렇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이라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노환때문에 어머니 김애란(87)씨를 만나지 못한 양한상(69)씨도 "먼길을 오고도 지척(서울 서교동)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간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다"며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김용호(72)씨는 "오늘이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만나는 날이라고 말하지 말라"며"아직 조카들도 다 만나지 못했는데 반드시 통일이 돼서 가족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며 재상봉의 의지를 다졌다.

김옥배(68)씨는 "마음속 깊숙이 사무친 50년의 한을 어떻게 3박 4일의 짧은 기간에 다 풀수 있겠느냐"며 "그러나 오늘 가족들과 헤어지기 전까지 못다한 말들을 다 나누고 특히 어머니께 '건강하세요'라며 큰절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북한영화 '꽃파는 처녀'를 촬영한 북한 최고의 촬영감독 하경(74)씨는 "가족들이 몇십년이 지나도록 못 만나는 데는 조선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다시 주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날 부모님 영정앞에 잔을 올리며 어머니 추모 자작시 3편을 낭독한 북한의 대표적 서정시인 오영재(64)씨는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섭섭하지만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이들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위해 양측의 문학가들이 좋은 글들을 많이 쓰자"고 당부했다.

'8·15 이산가족' 상봉 사흘째인 17일 남북 이산가족들은 짧은 상봉의 기쁨과 흥분 뒤에 찾아올 헤어짐을 준비하려는 듯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산가족들은 상봉 첫날, 둘쨋날과는 달리 차분한 가운데 전날 만났던 북쪽 친지들 이야기로 웃음 꽃을 피우면서도 반세기만에 어렵게 만난 혈육을 내일이면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면 금세 분위기는 아쉬움으로 변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이산가족들간의 교류도 잦아질 것으로 보고 "죽기 전에 최소한 한번 정도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겠냐"며 기대했다.

일부 이산가족들은 지난 이틀동안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고기 등 기름진 음식을 먹은 탓인지 제대로 소화를 못하고 속이 좋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6·25전쟁중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형 이종필(69)씨와 상봉한 종덕(64·충남 아산시)씨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이 남는다"며 "잠자리를 같이하며 하루라도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북쪽 지질학박사인 이운룡(68)씨의 동생 이정호(59·서울 강남구 삼성동)씨는 "어제까지는 형과 이야기를 하고 나오면 입술이 바짝 마르고 매우 긴장했는데 오늘은 편한 마음으로 작별인사를 할 것 같다"며 "모쪼록 형이 건강하게 잘 살아 죽기 전에한번이라도 더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에서 온 사촌형 김용환(70)씨를 만난 용승(68·경기 하남시)씨는 "긴장한 탓에 지난 14일 이후 화장실을 제대로 가지 못했다"며 "어제는 웃는 시간이 많았지만 오늘 헤어질 때는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흘릴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조주경(68) 김일성대 교수의 처남인 임환규(78·강원도 양구)씨는 "매제를 보니 북에 두고온 여동생 생각이 더 간절했는데 처음보는 매제가 술을 권하며 동생이 잘있다고 전해 줘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북에서 온 임재혁(66)씨의 형 창혁(69·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앞으로 편지를 교환하거나 면회소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며 "너무 짧은 만남이라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북쪽의 형 문병칠(68)씨를 만난 병호(63·서울 성북구)씨는 "역사적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서로 누가 안되도록 열심히 노력하자고 약속했다"며 "다음번에는 북쪽의 조카 손자들이 내려왔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쪽 형 신승선(69)씨를 통해 지난번 남북문화교류 때 조카가 교예단의 일원으로 두번이나 남쪽을 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창선(64·충북 단양읍 도전리)씨는 "진작에 알았으면 더 빨리 북쪽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텐데…"라며 분단의 아픔에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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