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묘소 없애는 사람들

오늘은 처서. 추석이 꼭 20일 남았다. 바야흐로 벌초의 계절.

이 땅의 남자들 치고 벌초가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은 드물리라. 막히는 도로, 키 보다 더 높이 자란 풀들, 목숨을 위협하는 말벌, 가을이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한낮의 열기… 편리하다지만 도시인의 서툰 솜씨에는 예초기조차 버겁다.

그러나 이 정도는 그래도 이겨낼만한 일. 중년을 넘긴 적잖은 사람들은 조상 산소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자식대, 손자대까지 과연 이 산소들을 돌봐 주기나 할 것인가?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는데…"

자신이 없다. 더욱이 지금은 대대로 한곳에 머물러 사는 농경사회가 아니잖는가. 이 도시 저 도시가 문제가 아니다. 미국·남미·베트남… 어디든지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이 현대인. 그렇다면? 산소가 잊혀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까딱하면 후손들의 거취가 산소 걱정 때문에 부자유스러워진다면 그 일은 또 어쩌나? 어느해 신문에 실렸던 그 사진. 이민 가는 후손이 조상 산소가 걱정돼 시멘트로 봉분을 덮었던 그 모습!

자손이 대대로 이어져 나가리라 장담하기도 힘들다. 지금은 거개가 아들이라곤 하나 달랑 낳고 마는 시대. 그렇지만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만 해도 한해 1만명이나 되지 않는가? 대가 이어지고, 그래서 선조들의 산소가 온전히 보살핌 받으리라 누가 자신하리요.

그래! 내가 결단을 내리자. 이런 걱정을 내 대에서 마감해야지… 지금 적잖은 사람들이 선조들의 묘소를 정리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이동명(56·대구시 노원3가)씨는 고령 쌍림에 모셔져 있던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 등 세 분의 유해를 지난달에 정리했다. 어머니 장례에 맞춰 화장한 뒤, 유골을 대구 근교의 현대공원 납골묘로 옮겨 모신 것. 오래 생각해 오던 일이라, 어머니 생전에 이미 형제·사촌들과도 의논을 해 놨었다.

대신 만들어진 것은 가족 납골묘. 번거로운 절차와 분묘 개장 부담을 우려했지만, 막상 해 보니 절차도 간단했고 심리적 개장 부담도 견딜만 했다. 어머니 산소터가 마땅찮았던 터라, 양친을 함께 모시게 된 것에 오히려 마음이 푸근해졌다. 기분이 개운해지니 하던 사업도 잘된다.

"무척 편합니다. 전에도 산소를 자주 가보고 싶었지만, 반나절 이상이나 걸리니 어디 마음대로 됐습니까? 그러나 가족 납골묘로 모신 후엔 한달새 3번이나 들렀습니다. 게다가 관리비 조금 내면 일년 내내 깨끗하게 관리되니 더 흡족하지요".

이씨는 국토 보전 등 거창한 명분은 필요치 않더라고 했다. 그냥 모든 게 장점이더라고.

"명당이 따로 있겠습니까? 햇볕 잘 들고 큰 비 와도 걱정 없고, 기쁜 일이나 울적한 일이 생길 때 쉽게 찾을 수 있으면 그곳이 명당이지요". 묘소가 가까워졌으니 앞으로는 자손들도 발길을 끊지 않을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대부분의 공원 납골묘는 6~12위까지 모실 수 있고, 입구까지 자동차로 다가갈 수도 있다작년 초에 아버지 유해를 납골묘로 옮겨 모신 최성배(45·대구시 상동)씨. 그에게 선조의 묘소를 정리하고 가족 납골묘로 모시자고 권한 사람은 오히려 노모였다. 자식들이 선뜻 꺼내기 어려운 말을 집안 어른이 먼저 마음 써 줌으로써 큰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 최씨는 한 묘소에서 가족 성묘를 모두 마칠 수 있게 돼 좋다고 했다. 매장 산소가 있을 때는 성묘도 항렬대로 해야 해 이 산 저 산 오르내리느라 무척 번거로웠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져서일까? 매장 묘소를 남기지 않으려 화장하는 일이 근년 들어 급증했다. 1993∼1998년 사이 대구 장묘사업소의 연평균 화장 수는 3천100건. 그러나 작년에는 5천건에 육박했고, 올해도 7월말 현재 3천건에 달했다. 그 중 70% 가량은 묘지를 없앤 뒤 하는 유골 화장이고, 상당수는 개발로 밀려난 무연고자 것이다.

대구의 연간 사망자는 1만여명. 그렇다면 사망 직후 화장률은 10% 정도 되는 셈이다.

한 많은 사별, 못 다한 효도, 함께 나누고 싶은 수많은 이야기들… 남은 이들에게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는 아쉬움들이다. 첩첩 산골짜기에 모셔서야 어찌 말없는 대화나마 자주 나눌 수 있으리요.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생각을 바꿀까 고민 중이다.

曺斗鎭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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