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과거(科擧)제도의 시초는 788년(신라 원성왕 4)의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고, 학문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 때문에 엄격한 의미로는 고려 광종 때부터 시작돼 조선 말기까지 존속했다. 관리의 등용을 위한 과거시험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본격화, 과거를 통하지 않고는 출세의 길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부상했었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소과(小科)·문과(文科)·무과(武科)·잡과(雜科)가 있었고, 과거와는 구별된 취재·음직제도에 의한 문음(問蔭)·이과(吏科)·도시(都試) 등이 있었지만, 문과가 가장 어렵고 중시됐다. 그 결과 정치의 중심 인물은 문과를 통해 양산됐으며, 이 길을 통하는 것이 자신이나 가문에 떳떳하고 정상적인 길로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 50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10만명의 신상 명세서가 한·미 두 노학자의 집념으로 빛을 보게 돼 화제를 낳고 있다. 에드워드 와그너 전 하버드대 교수와 송준호 전북대 명예교수가 태평양을 넘나들며 33년간 공동 조사·연구 끝에 이른바 '와그너·송 프로젝트'를 완성, 내년 '문과 방목'(전 6권) 간행을 시작으로 일반에 책과 CD로 선보이게 된다.
이 조선시대 지도층 인명록은 '문과 방목'과 '사마 방목'을 중심으로 읍지·호적·문집·실록 등을 조사해 문과 급제자 1만4천600여명, 생원·진사 시험 합격자 4만7천700여명 등 6만여명에 대해 일일이 정리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명부에 등장하는 친인척을 포함해 10만여명에 대해 생·몰년, 친가·외가·처가, 자·호, 본관, 최고 관직, 거주지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문과 급제자는 일부 씨족에서 많이 배출됐고, 특정 집안에 집중된 현상도 두드러져 있다. 씨족 가운데는 전주 이씨가 844명, 안동 권씨 358명, 파평 윤씨 338명, 남양 홍씨 322명, 안동 김씨 309명 순으로 많은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아무튼 이 방대한 작업은 날이 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우리의 뿌리와 역사인물에 대해 새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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