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산 정상 일자봉에서 내려보는 단풍은 말그대로 장관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다 다시 육지로 사정없이 내려 앉기를 반복하는 수백 겹겹의 산봉우리가 현란한 오색 군무를 한다.
풍수사 김중한(68·안동시 용상동)씨를 따라 일월산의 지맥과 명당을 찾아 나섰다. 일월산의 지세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풍수사들은 한반도의 태조산(太祖山) 혹은 조종산(祖宗山)으로 백두산을 친다. 백두산 줄기는 군데군데 곁가지를 치지만 주된 지맥은 줄곧 남쪽으로 치닫고 있다. 태백산을 지나 지맥이 여러갈래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은 서편으로 살짝 비껴 일월산을 만들어 낸다.
일월산은 주변의 백암산과 울련산, 검마산, 흥림산, 장갈산 등 소산들을 거느리는 넓은 지세를 보이고 있어 영산(靈山)이라 한다. 산사람들도 일월산 앞에는 어김없이 영산이라는 별칭을 붙인다.
조선조 읍취락 진산(眞山)을 적어 놓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양군의 진산을 작약산(芍藥山)으로 명기하고 있다. 진산은 고을이나 마을 뒤편에 위치해 그곳에 기운을 전하거나 보존해 주는 산이다.
역설적으로 일월산은 그런 마을 단위의 조그만 산이 아니라 지세를 봉화, 울진, 안동까지 뻗치는 광활한 지맥의 주산(아버지 산)으로 여겨 그 위상을 달리 했다는다는 얘기다.
김씨는 "일월산의 지맥은 서남쪽으로 내달아 장갈산을 만들고 그 기세가 안동시 예안면에 이르러 퇴계 이황 선생의 출생명당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하나의 지맥은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부용대 절벽아래 물길로 이어져 대길파문(大吉破門)을 형성, 마을 앞산과 부딪히면서 서애 유성룡 선생이 태어난 충효당에서 모든 기운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인다"
일월산은 풍수적으로 어떤 향상을 띠고 있을까. 일월산은 높이 1천219m의 일자봉(日姿峰)과 1천205m의 월자봉(月姿峰)으로 형성돼 있다.
김씨는 명당지도를 펼쳐 일월산 좌청룡 지맥은 일월면 칠성봉과 수비면 검마산을 만들고 석보면 명동산으로 이어지고 우백호 지맥은 동화재 능선으로 이어져 봉화군 재산면 덕봉산과 안동시 예안면 장갈산(長葛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형국이라고 설명한다.
이 지맥들은 수백리를 내달으면서 곳곳에 혈장과 명당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김씨는 "일월산의 일자봉과 월자봉은 여성의 가슴형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어머니가 머리를 숙이고 긴 팔을 벌려 애기를 어르는 모습으로 분명한 여산(女山)"이라고 말한다.
어머니 품에 안긴 형상을 한 일월산 남쪽자락의 숱한 촌락들은 양(陽)의 기운을 받아 많은 인물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골짝마다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어머니 품속이 아닌, 등에 업힌 형상을 하는 일원산 북편 일월면 용화리와 수비면 신암리 지역의 경우 음(陰)의 기운이 내려 역사적 질곡이 어느 지역보다 강했다는 것이다.
일월면 용화리 선녀골 자락과 수비면 일대에 무속과 사찰의 번성도 이같은 음(陰)의 기운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한다.
이와는 다른 형상론도 있다. 풍수사들마다 산의 형상을 바라보는 간룡법(看龍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30여년간 풍수와 역학을 연구하고 있는 김진학(61·청기면 행화리)씨는 "일월산의 일자봉과 월자봉은 마치 청룡과 백룡이 뒤엉켜 승천하는 모습으로 쌍룡승천형(雙龍昇天形)"이라고 밝힌다. 일월산을 쌍용악이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에서도 이같은 형상을 짐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일월산의 풍수형국을 보는 시각도 각각이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지는 풍수사들도 혈장(血場)과 명당(明堂)을 판단하는 데는 같기 때문이다.
일월산 일자봉과 월자봉 맞은편 정상에 닦아 놓은 헬기장. 김씨는 이곳을 중심으로 패철을 놓고 지맥을 설명한다. "음(陰)기가 왕성해 왕비가 태어날 형국"이며 "눈앞에 펼쳐진 지맥이 자좌오향(子座五向)으로 이곳 주변에 일월산 제일의 명당이 있다"고 했다.
일자봉을 뒤로 하고 쿵쿵목이와 노루모기를 거쳐 2시간만에 소봉들이 즐비한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뒷산에 도착했다. 일월산 양혈(陽血)의 명당자리다.
부드러운 소산들이 마을 뒤를 병풍처럼 두르고 마을로 뛰어 들것만 같은 앞산 삼봉이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모든 산 지맥들이 마을을 에워싸듯 모아져 있는 형국이 한눈에 명당임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일월산 자락 마을 뒷산에서 가늘게 흐르던 물은 주실숲을 비껴 곧바로 장군천으로 내리 꽂혀 대길파문을 형성한다.
그야말로 풍수에서 명당을 살피는 뒷산과 앞산, 물길 등 3가지 요소를 한꺼번에 잘 갖춘 명당형국을 띠고 있다.
김씨는 "주실마을 뒤로는 일월산에서 남향으로 내리는 능선과 소봉들이 에워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삼봉이 걸어오는 듯한 생룡봉(生龍峰)으로 연자봉과 문필봉 형상을 보인다"고 했다.
주실마을은 이런 명당자리에 자리잡으면서 시인 조지훈을 비롯한 문인과 박사만 28명, 장성10여명 등 숱한 인재를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월면 용화리 일대는 음혈(陰血)의 명당이 즐비하다. 갈오인수형(渴獒人水形)으로 일자봉과 월자봉에서 출발한 수많은 능선이 북동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가재의 발모양과 같이 선녀골짝을 향해 안쪽으로 모아지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일월산 정상에서 내뿜는 음기가 능선을 타고 이곳에 모두 모아져 비로소 영험의 현장을 만들고 있고 무속인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도 이같은 연유"라고 설명했다.
일월산 일대에 자리잡은 산촌들은 대부분 명당 터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그러나 "숱한 명당과 좋은 지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수사들은 한결 같이 '복인(福人)이 봉길지(奉吉地)'란 말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명당이 있다"고 덧붙인다.복 있는 사람, 천운이 있는 사람,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이 길지를 만날 수 있다는 속내를 깨달으며 산을 내려왔다. 일월산 자락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지세를 우리의 발복에 말없이 쏟아붓고 있을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