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마음만 먹으면 '고객돈은 내돈'

14일 농협 여직원이 고객 예탁금 5억6천여만원을 빼돌려 경찰에 구속된 사건은 금융권의 허술한 고객관리와 내부감사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번 농협 여직원의 횡령과 지난 9일 발생한 조흥은행 광주 화정동지점장의 27억 횡령사건은 금융기관이 직원들의 불법적인 고객 예탁금 운용에 무방비 상태임이 드러났다.

대구 모여상을 졸업한 박모(30·북구 복현동)씨는 지난 86년 농협 산격지점에 입사한 뒤 96년부터 최근까지 산격지점과 중앙지점에서 4년동안 고객 8명의 정기예탁금 13건 3억6천여만원을 빼돌려 주식투자와 동생의 집마련에 사용한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박씨는 고객들이 납부한 지방세를 빼내 쓴 뒤 고객 예탁금으로 메우고 고객 예탁금 만기가 돌아올 경우 다시 지방세 납부금을 빼내 충당하는 방식을 반복하며 고객 돈을 '내 돈'처럼 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농협중앙회 대구본부는 내부감사를 통해 이 사실을 적발하지 못했으며 고객 김모(65)씨가 정기예금을 중도 해약하지 않았더라면 박씨의 불법행위는 계속 자행됐을 것이다.

농협중앙회 대구본부 관계자는 "내부감사가 2~3년마다 한차례씩 이뤄지는데다 직원들이 예금 해지계약서와 도장 등을 조작해 자금을 운용할 경우 사실상 적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금융업무의 효율성과 인력부족으로 입·출금 서류와 예탁금 해지계약서 등에 대한 세밀한 확인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때문에 금융기관 직원들의 예탁금 횡령에 대한 견제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비슷한 상황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금융기관 한 관계자는 "최근 금융권 2차 구조조정을 앞두고 직원들의 고용불안과 도덕적 해이가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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