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대선 2000-개표싸고 미 전역 설왕설래

역전에 역전이 거듭되고 있다. 고어가 이겼던 지역에서 부시가 뒤늦게 역전 승세를 잡더니, 다시 고어가 올라섰다. 여전히 개표가 진행 중인 곳곳에서 지금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뉴멕시코 주 선거 결과가 14일 또 뒤집혔다. 부재자 개표까지 끝났을 때는 부시가 단 몇 표 차로 역전승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뒤늦게 또 고어 승리로 밝혀진 것.

이 재역전은 집계된 표 숫자를 읽는 과정에서 개표 종사원들이 고어의 '620표'를 '120표'로 잘못 읽었음이 드러나 초래됐다. 이로써 고어는 결국 부시보다 374표를 더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

5명의 선거인이 걸려 있는 뉴멕시코주의 이번 재개표 결과는 대선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플로리다를 부시가 장악해 27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더라도 고어는 3명의 선거인만 부시를 배신해 준다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스콘신 주에서는 141명의 대학생들이 "한 차례 이상 투표했다"고 시인, 부시측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주에선 고어가 6천표 차로 승리했다.중복투표는 특히 고어 지지세력이 밀집한 밀워키의 마켓대학에서 발생, 검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ABC방송이 전했다. 한 학생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4차례나 투표했다"고 말했다.

○…전국 투표구 중 유일하게 고어-부시 양측이 꼭같은 득표수를 이뤘던 아이오와 주 시더 카운티에서 개표를 최종 마감한 결과, 결국 고어의 승리로 판가름 났다.당초 7일 밤 첫 개표에서 두 후보는 각각 4천25표를 획득했으나, 부재자 등 뒤늦게 도착한 투표지들에 대한 최종 개표 결과 고어가 4천33표로 부시보다 단 2표 앞선 것으로 14일 공식 집계됐다.

이곳 최종 개표 결과는 선거의 전국 판세와는 아무 관련이 없으나, 박빙세의 상징으로 주목됐었다.

○…이번 대선에 대한 풍자와 농담이 만발하고 있다.

NBC-TV의 인기 풍자 프로그램 '토요일 나이트 라이브'는 고어와 부시가 백악관에 나란히 입성해 서로 으르렁거린다는 내용의 희극을 연출했다. 극 중에서 괴팍한 성격의 고어가 정책 서류들을 꼼꼼히 훑어보고 있는 동안, 성실하지 못한 부시는 바로 옆에서 바닥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며 법안 뭉치들을 뭉갰다. 퇴임 후 갈 곳이라고는 부인 힐러리의 상원 휴게실밖에 없는 클린턴 대통령도 등장, "대통령이 정말 필요할까? 대통령 없이 4년간 한번 해보자"고 비꼬았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도 부시의 얼굴에 고어의 몸통을 한 가상의 인물을 백악관 앞에 등장시켰고, ABC뉴스의 한 정치 해설가는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국민들은 대통령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데이비드 레터맨 쇼', CBS-TV의 '더 레이트 쇼' 등도 비꼬기는 마찬가지. 사이버 공간은 더 신랄하다. '레터맨 쇼'의 책임 제작자는 "이번 대선은 앞으로도 계속 풍자거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인터넷 경매인은 현지시간 13일 미 대통령직을 인터넷 경매에 부쳤다. 경매 사이트 e베이에 올린 상품 설명에서 그는 "개표 혼란으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취소됐으며, 이제 일반인들에게 대통령이 될 기회가 주어졌다"며, "이 경매에서 대통령직을 낙찰 받은 사람은 부통령을 자신이 선출할 수도 있다"고 희롱했다.

그러나 e베이 측은 1센트에 시작된 입찰가가 4시간만에 1억 달러를 넘어가자 '대통령직 매물'을 사이트에서 급히 지웠다.

○…선거 재판은 주 법원에 맡겨야 할까, 아니면 연방법원에 소송이 제기되는 것이 맞을까? 드디어 이런 문제까지도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본격적인 법정 투쟁이 한국시간 14일 시작된 뒤, 부시측은 연방법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州)의 일은 해당 주에 맡겨야 한다"고 평소 주장해 온 부시가 이같은 태도를 취하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고어측은 주 법원에서 해결하자고 맞섰다.

이같은 입장 차이는 두 종류의 법원에 있는 판사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 플로리다 주법원은 대부분 민주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연방법원은 공화당 정권 때 지명됐던 판사들이 주류를 이룬다. 대법관은 보수계가 진보계를 5대4로 앞서 있다그러나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려면 연방 헌법을 위반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부시측은 "민주당 아성에서만 재검표를 실시하는 것은 연방헌법의 평등권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판사는 "검표 문제는 헌법과는 무관한 기술적 사안이므로 연방법원에서 다룰 필요가 없다"고 기각했다. 그는 1997년 7월 고어 편인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하지만 부시측이 항소장을 제출하려는 애틀랜타 고등법원에선 공화계가 우세하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지금까지 플로리다 주에서 제기된 소송은 모두 9건. 그 중 부시측이 제기한 수작업 재검표 금지 신청만 연방법원에 제출됐다. 그 외 8건은 고어측이 낸 것으로, 8건 모두 주 법원에 제기됐다.

○…한국시간 14일 있었던 결정의 당사자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시측 수검표 금지 요청을 기각한 연방지법의 도널드 미들브룩스(53) 판사는 플로리다 토박이인 정통 민주당원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성향과 관계 없이 공화·민주 양당으로부터 모두 "공정하고 사려깊은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25년여 간의 법조계 활동을 통해 어린이 권리보호 운동, 사형수·빈민을 위한 변호사 연결 등에 앞장서 왔다. 현지 언론들도 법정에서는 정치색을 배제하고 용기있는 판결을 내리는 인물이라고 그를 평했다.

반면 개표 작업 완료 시점을 14일 오후 5시로 못박은 캐서린 해리스(43·여) 주 국무장관은 부시의 강력한 지지자이다. 현지 부시 선거진영의 공동 대표를 지냈고, 지난 7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공화당 전당대회 대의원으로 참석했다. 지난 1월 예비선거 때는 부시의 동생인 주지사와 함께 집집마다 찾아가 선거운동을 벌였다.

플로리다의 명망있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공화당과 관계을 맺었고, 하버드에서 공공정치학을 전공한 뒤 1998년 주 국무장관으로 선출됐다. 올해는 상원의원 출마설이 나돌기도 했었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대사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팜비치 3명의 재검표 선관위원 중 1명(민주당측)으로 수작업 재검표를 제일 먼저 주장했던 캐럴 로버츠(여)는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다.

○…플로리다 재검표 논란으로 '채드'(chad)라는 생소한 단어가 미국 정치사전에 새로운 어휘로 실리게 됐다. "펀치 카드를 이용해 투표할 때 투표지에 구멍을 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오는 장방형의 조그만 종이 조각"이란 뜻.

이번 선거 말썽꾸러기는 바로 이것이었다. 고어측이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한 플로리다 4개 카운티 중 팜비치 등 3개가 이 펀치카드 시스템으로 투표했다. 현재 미국 전역의 투표구는 이 시스템을 버리고 컴퓨터 시스템으로 옮겨 가고 있다. 4년 전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37%가 펀치카드 시스템을 이용했었다.

○…재검표 법정 공방이 전개되자 두 후보 진영은 그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각각 '재개표위원회'를 구성, 300만 달러의 모금 활동에 돌입했다.

부시측 선거본부장은 지지자들에게 e메일로 '긴급 메시지'를 발송, "법정 대응을 하기 위한 경비가 조속히 모금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후 1인당 5천달러 이상은 받지 않으며, 모금 목표액은 300만 달러라고 관계자는 말했다. 고어 측도 e메일을 발송해 본격 모금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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