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천만 농민들 '성났다'경북도내 1만5천명 동시집회

이젠 1천만 농민들마저 성났다. 소.돼지.포도.배.사과.쌀 등 어느 것 하나 성하지 않을 만큼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사태를 맞은 가운데 「농심」 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경북지역 농업경영인연합회 등 농민단체들을 비롯한 농민들은 21일 오전 18개 시.군에서 1만5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농가부채특별법 제정, 농산물 가격안정대책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청송, 성주 등지의 농민들은 이날 배추, 사과 등을 도로에 버리는가 하면 소.돼지 등을 도로로 내모는 등 과격한 방법으로 농정 실패에 대한 분노를 표시했다.

청송지역 4개 단체와 농민 1천여명은 오전 9시부터 현서면 화목장터에서 농민대회를 열고 트랙터와 차량 200여대를 앞세워 진보면까지 차량시위를 벌이며 도로와 용전천변에 사과 300여상자를 내던졌다.

또 집회가 열린 시.군마다 시가행진을 벌이고 오후 4시 대구시 북구 동호동 경북농업인회관에서 열리는 해단식에 참가하기 위해 차량과 농기계 등이 국도로 대거 이동, 시속 30~50km 속도로 정속운전하며 차량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경북 지역 국도와 시가지 곳곳이 하루 종일 심각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오전 9시20분 봉양면 중앙고속도로 IC 주변에서 농민대회를 가진 영양지역 1천여 농민들은 대회 후 200여대의 차량을 이용해 국도로 진입, 차량 행렬이 3~4km 늘어서면서 국도 34호선이 사실상 마비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가행진이나 고속도로 차량 시위를 막기 위해 나선 경찰과 크고작은 마찰을 빚었다. 영천지역 농민 900여명은 영천톨게이트에서 1t트럭 200여대를 앞세워 경부고속도로 점거에 나섰으나 전경 1개 중대와 바리케이트, 11t트럭 등으로 진입을 원천봉쇄한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헬기 2대를 띄워 상황을 파악하며 2천여명을 동원, 고속도로 진입로를 봉쇄하는 등 대응에 나섰으나 농민들이 대부분 국도를 이용, 차량 통제에는 실패했다.

이동우 농업경영인연합회 경북도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농민들이 각종 농산물값 폭락과 정부의 농업정책 부재로 파산직전에 놓여 있다』며『농민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엄청난 파장이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2부

농민시위 조직화.강경화,생존권 위기 대정부 투쟁으로

'돼지고기 한 근에 껌 두통, 단감 15kg 한 상자에 설렁탕 두 그릇, 주키니 호박 20개들이 10kg 한 상자에 심플 담배 두 갑'

21일 전국적으로 열린 농민 총궐기대회는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농촌 현실에 대한 농민들의 울분이 본격적인 대정부투쟁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되리라는 점에서 우려와 파장은 클 수 밖에 없다.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쏟아부은 시설원예의 첨단 기자재들이 애물단지로 내팽개쳐지고, 소와 돼지가 가득 들어찼던 축사는 텅 빈지 오래. 바닥에 떨어진 농산물 가격에 절망감과 패배감에 빠져 있던 농민들이 마침내 정부의 책임과 납득할 만한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집회는 종전 사안별 국지성 집회가 주류를 이루던 농민대회가 전국 동시다발로 확대됐다는 점, 그동안 추곡가 인상수준에 그쳤던 요구내용이 농업 전반에 걸쳐 다양해졌다는 점 등에서 농민운동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지금까지 자생단체인 소수 농민회가 농민들의 불만여론을 주도해 왔으나 이번에는 정부지원까지 받는 농촌지역 최대조직인 농업경영인 연합회를 비롯, 4H연합회, 농촌지도자회 등 대정부투쟁을 자제해 온 단체들이 적극 선두에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실제로 이날 집회에는 경주 5천명, 김천 2천명, 영주.상주.청송 각 1천명 등 경북도내 18개 시.군에서 1만5천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신고됐으며 경찰도 최소 8천명 이상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할 정도로 대규모로 진행됐다.

그만큼 농민들이 몸으로 겪고 있는 생존권에 대한 위기감이 정부나 정치권이 책상머리에서 막연히 추정하는 분위기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 정부가 20일 내놓은 농가부채 경감책에 대해서도 농민 대다수가 의례적인 위무책 정도로 여기고 있다.

21일 집회의 방식이 농업경영인 경북도 연합회 임원진 삭발식을 시작으로 도로점거, 농산물 투척과 소각, 소.돼지 길거리 내몰기 등 종전에 비해 훨씬 조직적이고 과격해진 것도 농민들의 이같은 의식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나 정치권, 지자체나 농.축협 등은 '농민 살리기'에 팔을 걷어부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정쟁만을 일삼아 향후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이날 집회 참가자들은 "오죽하면 농민들이 애써 기른 농산물을 내다 버리고 불태우는지, 소.돼지를 길거리로 내모는지 이해해 달라"며 "정책당국이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농민들의 대정부투쟁은 갈수록 강화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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