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민영화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홍콩의 명물로 소개되던 즉석 과일주스 가게가 뉴욕시내 한복판까지 점령했다. 쇳물로 상징되던 대량생산시대를 마감하는 것을 사람들은 용케도 입으로 몸으로 느끼고 있다. 격변의 시대에, 시대 흐름을 잘 타는 개인이나 집단은 그야말로 100년 대계를 준비할 수 있는 반면 시대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100년 전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고 있다.

지난 90년대를 돌아보면 미래를 잘 준비하고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로 구별된다. 현재 미래를 앞서서 준비하고 있는 나라들은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소비자와 유권자가 동원세력에서 참여세력이 되면서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없는 초대형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자신의 실직과 직결된다는 것을 아는 소비자들이 동네 구멍가게 되살리기 운동에 나선다. 물건이 좀 비싸도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라 동네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것이 값으로 매겨지지 않는 장점이라는 것을 안다. 시설비가 많이 든 백화점보다는 작은 가게를 이용하는 것이 작은 노력이지만 전체 경제구조를 바꾼다는 것을 안다. 게다가 국산품 애용은 사실상 고용안정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안다. 유럽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대신 다시 유럽 영화가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보호조항을 철폐하고 일본 소비자가 제조 국적을 불문하고 상품을 소비하게 되면 일본의 실업률은 2.5%에서 40%로 늘어나리라는 것이 매킨지 컨설팅사의 일본 보고서 내용이다. 신자유주의가 도래할 때는 공기업의 민영화, 탈 규제가 효율성을 가져오고 효율성의 대가가 현실에 실망하고 지친 사람들의 미래를 약속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의 적절한 규제 없이는 효율성도, 최소한의 복지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생선을 고양이에게 맡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선거에서 소중한 한표를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며 행사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나라는 국가에 대한 불신이 깊어 시장에 대한 규제 대신 탈규제, 작은 정부, 공기업의 민영화가 살 길 인 것처럼 착각하는 나라이다. 오죽하면 공기업의 민영화를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라고 하겠는가. 최우량기업을 헐값에 사는 것을 말한다. 멕시코에서는 전체 GDP의 22%를 장악하고 있는 37%의 기업가 집단이 민영화를 통해 멕시코의 공공사업을 장악하고 있다.

대우와 현대, 대한생명, 대한투자신탁 등 사기업이 공적자금의 수혈을 통해 실제로 국영기업이 되고 있는 마당에 쌀 이상으로 필수품이 된 전기를 민영화하겠다는 방침에도 아무도 위험을 경고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소한 것에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여당과 야당의 대립은 한일 어업협정을 비롯, 공기업의 구조 조정 등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토론이나 이의 제기도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시애틀과 프라하에서는 세계의 지식인들이 공기업 민영화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데 우리는 일제히 공기업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다. 공기업의 비효율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일제히 같은 목소리를 낼까?

공기업의 비효율성의 대안은 공기업의 효율적 경영이고 그것을 적절히 감시하는 것이지 곧 민영화는 아니라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단답식 교육에 길들여진 우리는 탈 규제, 공기업의 비효율은 바로 민영화라는 정 답을 생각 없이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한 우리의 이런 태도가 누구의 체리 피킹을 돕는지 한 번쯤 같이 생각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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