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 금리 전격 인하

미국의 금리 인하가 '시작'된 뒤 세계가 미 경기 경착륙으로 인한 피해를 모면할 수 있을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나타난 경기 상황은 종전 것과 많이 다른 것으로 분석돼, 앞으로의 전망 역시 장담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인하 시기 실기설=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신문은 4일자에서 미국의 금리 인하가 너무 늦게 그것도 소폭으로 이뤄짐으로써 오히려 신경제에 대한 공포를 확인해 주는 결과만 초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 FRB는 작년 12월 초 긴축기조로 시작했다가 그달 19일에야 이를 완화하기 시작했으며, 다시 2주일이 지난 지금에야 조치를 취했다. FRB가 너무 늦게 소폭으로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이번에 0.5%p를 낮춰도 금리는 작년 6월 수준에 불과해 일년 전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것. 민간부문이 투자와 소비를 지속토록 설득하려면 훨씬 더 큰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신문은 주장했다.

아시아의 분석가들은 이번 금리 인하 결정이 아시아 각국의 경기후퇴를 막기에는 충분치 못하다고 경고했다. 아시아 국가들도 금리를 따라 내려 수출이 증가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런 효과가 즉각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네덜란드 ABN 아므로은행의 싱가포르 주재 통화전략가 제라드 테오는 "금리인하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시차를 두고 나타날 것"이라며, "아시아 경제는 침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세계 경제도 계속 후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금리를 인하했다고 해서 개혁과 정치적 불안 등 아시아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투자자들은 이 문제를 다시 주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걸음 지표들=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는 미국의 급격한 경제 후퇴가 과거 구경제 때와 달리 "상반되는 지표가 병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종전엔 "2분기 연속 하강"을 경기 침체라 판단했으나, '신경제' 이후 침체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

예를 들면, 한쪽에서는 나스닥 지수가 9개월 사이 50% 이상 폭락하는데도 다른 한편에선 실업수당 신청액이 오히려 감소했으며, 소비자 자신감 지수가 2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한편에선 주택 매매규모가 증가했다. 이런 식의 엇갈린 통계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타임이 분석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은 악화되기 시작하면 종전보다 악화 속도가 훨씬 빠르게 나타난다. 침체에 가속도가 붙는 것. 조그만 악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둘째, 증시 그 자체가 경제활동의 결정 요소가 됐다. 종전 증시는 경제의 지표 역할만 했었다. 증권 보유 가정이 늘었기 때문이다.

셋째, 경기 후퇴와 실업률이 별개로 움직인다. 신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대량 해고가 이뤄졌지만 실업률은 그만큼 떨어지지 않았다.

넷째, 세계 경제가 연계돼 움직인다. 전에는 나라 마다 경기 사이클이 달라 미국의 경기 침체기에는 아시아 등 다른 나라가 호황의 덕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 이후 '내가 안 좋아지면 남도 안 좋아지는' 상황이 보편화되고 있다.

다섯째, 장기 호황으로 인해 "더 이상 살 것이 없다"는 식이 돼도 경기 침체가 온다. 이번 미국 상황이 그렇다.

◇세계 금리.증시 반응=미국 금리 인하에 따라 아시아 각국도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경제전문 통신인 블룸버그가 4일 보도했다.

미국 금리에 연동돼 있는 홍콩은 미국에 잇따라 곧바로 이미 기준 금리를 0.5%p 인하, 7.5%로 낮췄으며, 호주도 5일 중 금리인하를 단행할 전망이다. 한국.싱가포르.필리핀 등도 금리를 낮출 것으로 점쳐졌다. 필리핀은 단기금리를 1%p 낮출 전망이며, 대만에서는 이미 지난 주에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했다.

예외는 일본. 지난해에 '제로 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금리를 0.25%로 올렸기 때문에 추가로 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분석이다. 유럽 중앙은행도 미국의 움직임에 상관 없이 주요 금리를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한편 미국 금리 인하 뒤에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으나 일본만은 되레 하락했다. 미국 증시도 현지시간 4일엔 하락세로 돌아서, 나스닥은 1.9%, 다우존스 지수는 0.3% 낙폭을 기록했다.

외신종합=박종봉기자 paxkore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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