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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역사스페셜-사라진 보물창고 외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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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9월.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병인양요때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하겠다고 밝혔다. 그 후 7년여. 아직까지 300여점에 달하는 외규장각 도서는 반환되지 않고 있다. 외규장각이 세워진 것은 조선 정조때. 선왕들의 친필 문서, 어람용 의궤, 옥쇄 등 왕권의 상징물 중 가장 가치있는 것들을 영구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병인양요 시기 불타 버려 터만 남아 있기 때문에 사서들과 몇몇 그림자료로써만 과거의 위용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주 KBS 1TV 역사스페셜(13일 오후 8시)은 '사라진 보물창고 외규장각'이라는 제목으로 잊혀진 약탈의 역사인 외규장각의 왕실도서의 행방을 추적해 그 의미와 중요성을 조명하고 외규장각 터를 중심으로 완전 영상복원을 시도한다.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가 밝혀진 것은 지난 1978년. 당시 파리의 국립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재불서지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서였다. 그는 30대 초반 파리에서 우연히 발행된 19세기 병인양요 관계 서적들을 통해 외규장각 도서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근 20여년의 추적 결과 이 해 외규장각 도서들이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당시 우리나라의 국보급 서적, 외규장각 도서는 중국책으로 분류된채 파손품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 외규장각 도서를 확인하는 순간 '소름이 쫙끼치고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것이 박병선 박사의 회고.

조선시대때는 중요한 국가 행사때마다 기록과 그림을 남겼고 그 책을 의궤라 불렀다. 따라서 의궤는 당대의 역사 문화 예절법도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의궤는 보통 6, 7개를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한 권은 임금에게 올리는 어람용 의궤, 나머지는 관청에 보내는 분상용 의궤로 나뉘었고 두 종의 의궤는 겉모양 또한 달랐다.

어람용은 최고급의 종이질과 화려한 고리장식, 고급스런 비단 표지 등 정성과 재료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어람용 의궤는 경모궁 의궤 한 질뿐이다. 현재 프랑스 약탈품 중 박병선 박사 등에 의해 확인된 어람용 의궤는 모두 300권. 우리가 반환 받아 더욱 아껴야할 기록이자 보물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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