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에서 3년째 알로에농장을 하던 30대후반의 주부 농장주가 지난 폭설대란으로 하루아침에 알거지 신세가 된 사연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다. 3년동안 비닐하우스에서 땀으로 살다시피하며 그 부부가 일군 알로에는 올3월 출하를 앞두고 기상관측이래 기록적인 기습폭설에 폐농이 돼 버렸다. "98년 건설경기 침체로 남편이 꾸리던 아파트 철문공장이 부도가 나면서 시부모가 하던 이 농장을 4천만원의 대출금으로 겨우 일궈 이제 일어서는가 싶었는데…"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낸다. "이 알로에는 우리 11세짜리 아들의 희망입니다. 축사붕괴로 자살했다는 농민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것 같고 내가 지금 그런 처지입니다" "지난 여름엔 친정엄마가 오셔서 내꼴을 보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난 속으로 내년이면 목돈을 쥐고 빚도 꼭 갚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결국 헛사가 됐어요" "향토사단에서 장병들을 데리고 나와 도와주던 중령님이 성한걸 건져내려고 애썼으나 거의가 망가져 뭐라 위로의 말을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돌아갔어요" "1㎏에 3천원하는걸 단돈 700~800원에 사가겠다며 찾아오는 장사꾼들의 말에 더욱 분통이 터져요" "재해지구로 선포되나요? 그것도 말뿐이지 소용없어요. 언제나 안그랬나요? 당국에서 피해조사차 나온 분들도 크게 기대는 하지 말라더군요"
그녀의 얘기는 이번 폭설로 거의 폐농해버린 전국의 비닐하우스 재배농이나 축산농민들의 억장무너지는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거기서 그치는게 아니라 지난번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던 전체 농민들의 억하심정을 그녀가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지금 한참 고통을 겪고 있는 도시의 실직자, 노숙자, 서민들의 피창 터지는 심경까지 그는 대변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쟁에 떠밀린 민생
그런 폭설대란속에 도·농 할 것 없이 북새통인 그 와중에 이 나라 내각총수인 국무총리는 민주당 '의원꿔주기'로 자민련을 국회교섭단체로 만들고 '제2기 DJP공조'를 성사시킨 바로 그 충청도의 맹주 JP의 생일잔치에 참석하느라 이 국민들의 대란은 뒷전이었다. 윗전이 그 모양이니 그 수하의 고위공직자들도 대란의 현장에 있을리 만무했다. 국정(國政)과 정치(政治)가 민생(民生)을 외면하고 있는 이 나라의 왜곡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폭설대란의 진풍경이었다.
그 '의원 꿔주기'가 천부당 만부당 하다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자민련의 강창희 의원은 끝내 당에서 쫓겨났다. 지난 총선때 야당하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걸 지키겠다는 그의 소신을 JP와 공주고보 동기생인 그의 장인은 '고추는 끝까지 매워야 고추'라며 그를 격려했다고 한다. 그의 홈페이지엔 전국에서 격려메시지가 폭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생을 지키겠다고 다짐한 정치인은 이렇게 쫓겨났고 그 민생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인들은 바로 그 국민을 들먹이며 생사여탈의 싸움질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 사이 민생과 경제는 그냥 떠내려가고 있다. 지난번 여당 지도부가 바닥민심을 직접 살펴 본다면서 수도권일대의 시장 주택가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가히 봉변을 당하다시피 '성난 민심'에 놀라 황급히 당사로 도망치듯 발길을 돌린적이 있었다. 그게 불과 몇달전인데 벌써 우리 정치인들은 건망증에 걸린듯 이 민심에 배치되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이젠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 폭설로 비행기결항이 이어지자 어느 영국인 여행객은 김포공항에서 "눈이 하루 이틀 왔다고 며칠이나 비행기가 못뜨는 이런 나라는 처음 본다"고 푸념을 했다고 한다.
등 따습고 배부른날 언제오나
그야말로 무슨 정치가 이 모양인 이런 나라가 있는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있고 여건만 되면 이민갈 생각을 갖고 있는 국민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 현상은 특히 20대의 젊은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결국 우린 희망이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에 다름아니지 않는가. 대전 알로에농장을 폐농한 주부의 좌절과 절망의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고 당에서 쫓겨난 한 국회의원의 모습이 한없이 외롭게 보인다.
어느 라디오 아침뉴스 앵커가 '정치는 한마디로 국민들의 등을 따습게하고 배불리게 하는거라고 하는데 청취자 여러분은 지금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릅니까'하던 그 소박한 코멘트가 새삼 의미가 있게 들린다.
박창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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