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협 털다 잡힌 한 농민의 넋두리

『미쳐 갚지 못한 노임과 부채 이자를 갚으라는 독촉은 성화같고 갚을 능력은 도저히 없어 농협 금고를 털려고 했습니다』

18일 오후 영주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에는 농협금고를 털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영주시 풍기읍에서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박모(52)씨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이날 새벽 농가부채 등으로 빌린 4천여만원의 빚을 갚기 위해 풍기농협 금고를 털려고 절단기 등으로 출입문 셔터 좌물쇠를 절단하던 중 출동한 경비전문업체 직원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7천여평의 과수원을 하면서 농사만 잘 지으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졌지요. 그러나 언제부터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니더. 지난해도 제법 결실이 좋았으나 가격폭락으로 20kg 사과 한 상자당 5천∼6천원에 팔고 이 마저 판로가 마땅치 않아 지금도 자식같은 사과가 저장고에서 썩어갑니다』

박씨는 『사과를 팔아 1천500여만원의 돈을 손에 쥐었지요. 그러나 농약대와 일꾼 품삯을 제하고 나면 실제 수입은 몇 백만원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뼈빠지게 농사지어도 남는 것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빚과 앞일 걱정 뿐이었습니다. 농협빚과 사채 등으로 4천여만원의 빚만 졌지요』

경찰관계자는 금고털이의 성공 가능성은 1%도 안된다고 말했다. 야간에 농협에 침입했을 경우 자동 경비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농사만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박씨는 이날 「건너서는 안될 강」을 넘고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한 농민의 범행이 농촌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영주·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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