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감싸 쥔 아이들. 한 명이 고개를 외로 꼬고 바가지 물을 휙 뿌리니 한 명이 봉걸레로 대충 민다. 대표가 쪼르르 달려 가 "선생님 화장실 청소 다 했는데요". 어디 잘 했나 보자 하며 함께 간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이것도 청소라고 했냐?"결국 교사가 고무장갑을 끼고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긴다.
초등학교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후 풍경. 초교에는 여전히 아동들이 담당 구역을 정해 청소한다. 화장실은 대개 4~6학생 몫. 대구의 어지간한 초교는 화장실이 15~25칸이나 되다 보니, 화장실 두세 칸은 불가피하게 몫이 돌아 온다.
제 방 청소도 잘 않는 요즘 아이들. 냄새 나고 지저분한 화장실 청소를 제대로 할 리 없다. 그저 흉내 낼 정도에 그치기 일쑤. 결국 교사들이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학부모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러 일주일에 한두번씩 조를 짜 가는 학교도 적잖다.
게다가 대구시교육청은 '깨끗한 화장실 만들기'를 중요한 사업으로 정했다. 잘 된 학교는 시상하고 못 된 학교는 질책한다. 잘 되든 못 되든, 교사와 아이들은 '죽을 맛'이다.
대구 한 초교 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하소연. "저는 교직 7년째이지만 매일 같이 신경 써야 하는 담당구역 청소는 교직에 대한 애정까지 무너뜨릴 지경입니다. 올해도 교무실, 교장실.현관.교문앞, 화장실 두칸, 교실.복도를 맡았습니다.
아이들이 참 불쌍합니다. 한동안 학급 일이 바빠 화장실을 점검하지 못했더니 아이들이 청소를 게을리 했던지, 교장선생님의 눈길이 싸늘해졌습니다. 초교는 화장실이나 복도 청소할 사람 좀 두면 안 되나요? 담당구역 청소 신경 안쓰고 아이들만 신경 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초교생들로 하여금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요즘 아이들이라고 아예 시키지 않는 건 오히려 비교육적이라는 얘기. 한 교사는 "시킬 땐 인상을 쓰지만 억지로라도 하고 나면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들,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고 했다.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일부 교사들이 무의식적으로 시키는 '벌 청소'를 문제 삼기도 한다. 화장실 청소를 벌로 시켜서는 오히려 비교육적이라는 것. 그래 갖고는 "화장실 청소는 공부 못하고 선생님 말 안 듣는 문제아들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 십상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인식이 이렇게 되다 보니, 아이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나면 학부모가 뭣이 잘못됐나 생각해 촌지를 들고 찾는 일까지 더러 있다고 교사들은 씁쓰레해 했다.
화장실 청소 문제가 모든 초교에서 골칫거리 된 지 오래지만,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는 학교는 최근에야 나타나고 있다. 대구 교동초교 경우, 새학기 들어 청소 아줌마를 구했다. 범일초교는 이달 들어 퇴직 기능직에게 화장실 청소를 맡겼다. 몇몇 학교는 용역업체에 화장실 청소를 대행시킨다.
교동초교 황정환 교장은 그러나 역시 아동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위생이나 청결 문제 해결은 아줌마가 맡도록 하되, 화장실 관리와 환경 꾸미기 등은 아동들에게 맡겨 교육적 효과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올 들어 이같은 움직임이 생겨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게 교사들의 얘기였다. 학교운영위가 자리 잡아 가면서 교내 문제 참여 범위가 점차 넓어졌고, 전교조 합법화 이후 교원조직의 위상이 높아져 교내 민주화도 상당히 진행된 덕분이라는 것. 또 올해 들어 '학교회계' 제도가 도입돼 지원액이 학교마다 5천만원 이상씩 늘어, 예산 운용 폭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전교조 대구지부는 올해 단체교섭안에 화장실 등 교내 청소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김형섭 지부장은 "용역을 맡기든 사람을 구하든, 지금처럼 학생과 교사들이 고생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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