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생우 수입의 행로

근래 호주산 생우 수입을 둘러싼 갈등을 취재하면서, 한우농가들이 두 가지를 걱정하고 있음을 알았다.

첫째는 우리가 자칫 '장화 신은 원숭이'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원숭이가 신발 장수의 끈질긴 설득에 못이겨 공짜 신발을 신었다가 곤란에 빠지게 됐다는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원숭이가 신발에 익숙해지자 신발 장수는 드디어 돈을 요구했다. 할 수 없게 된 원숭이는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신발을 사 신어야 했다수입 소고기 소비가 일반화 되면 우리 입맛도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농민들은 말했다. 우리 혀가 어느 것이 한우 고기이고 어느 것이 수입 소고기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돼 버리면 어쩔 것이냐는 얘기였다.

고기 파는 사람이 한우 고기인지, 수입 고기인지, 소를 수입해 6개월 가량 키운 뒤 파는 '국내산 수입 고기'인지 정직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느 소비자가 제대로 구분해 낼 수 있을까? 그렇지만 한우 고기는 가격면에서 엄청나게 불리 한 상황이다. 결국 한우 농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나아가 더 많은 수입 소를 들여와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쯤엔 수입 가격이 아무리 비싸져 있다 하더라도 '장화 신은 원숭이' 모양으로 아무 소리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농민들의 두번째 걱정거리는 대기업이 소 수입에 가세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김해의 조그만 중소업체가 일을 벌였지만 농민들이 수그러들고 돈도 돼 재미가 있다 싶으면 대기업들이 너나 없이 달려들 가능성이 높다는 불안을 농민들은 떨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기업들은 '돈'만 된다면 구멍가게까지 넘봐오지 않았느냐고 한 농민은 말했다.

농민들이 저렇게도 결사적으로 소 수입을 막으려 하는 이면에는 이런 마음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민들도 뭔가 함께 고민해야 할듯 싶었다. '장화 신은 원숭이'가 될 위험선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도시 소비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뒤 호주 사람들이 장화 값을 올려 버리면 어디다 하소연 할 수 있을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