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맞선 250번 본 33세 서규찬씨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한해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915쌍이 결혼하고 329쌍이 이혼했다. 혼인율은 30년만에 최저(인구 1천명 당 7.0)로 나타났고 이혼율은 인구 1천명 당 2.5명으로 전세계에서 6위.

신문과 방송은 "자기 중심적 사고의 확산으로 독신이 늘고 이혼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기 때문" 이라고 분석한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점잖게 나무라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언론이 뭐라고 해도 미혼남녀들의 화두는 역시 결혼이고 부부가 가장 꺼리는 것은 이혼이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듯 보이지만 당사자들은 나름대로 악전고투한다.

지난 3년 동안 맞선을 무려 205번이나 본 남자 서규찬(33·국민연금 관리공단)씨. 맞선 205번에도 짝을 못 찾았다면 어딘가 단단히 탈이 난 사람쯤으로 생각되지만 외관상 그는 멀쩡하다. 키 175㎝에 몸무게 70㎏, 몹쓸 병에 걸린 적도 없고 술버릇이 고약한 것도 아니다. 인물도 괜찮다. 유머 감각은 절정에 올랐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가. 그렇다고 결혼 적령기 여성들의 기피대상인 장남도 아니다.

◈전문직 여성이면 더욱 좋아

서씨는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웬만큼 '경쟁력'을 갖춘 준비된 신랑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왜 결혼하지 못했을까."예쁘고 늘씬한 여자가 좋습니다" 서씨의 여성관은 비교적 간결하다. 키 165㎝이상, 이목구비 뚜렷한 미인이면 합격. 고졸이상 학력이면 되고 나이는 25세부터 34세까지 무관하다. 전문직 여성이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그만이다. 외모가 빼어난 여자라면 직업이 없어도, 성격이 좀 괴팍해도 참을 수 있다. 반대로 전문직 여성이라면 외모가 좀 빠져도 이해할 수 있단다.

그는 신세대답게 여성의 '과거'를 묻지 않는다. 물론 자신의 '과거'에 관해서는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는 전략이다. 부모님만 괜찮다면 이혼경력이 있는 여자도 상관없다. '과거있는' 여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미래없는' 여자는 못 참는다는 식이다. 물론 종교도 상관하지 않는다. 여자가 원하면 절에도 교회에도 성당에도 나갈 용의가 있다.

◈결혼 도망치듯 해선 안돼

200회가 넘는 선을 보면서 서씨는 주변의 비난을 무수히 받았다. '그만하면 됐다. 너는 뭐 그리 잘났다고, 네 나이를 생각해라…'.

"작년까지는 괜찮았는데 33세가 되고 보니 걱정이 많이 돼요" 서씨도 날이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 가는 자신이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평생 한번 해야 할 결혼을 도망치듯 해치울 수는 없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마음에 쏙 드는 여자랑 평생 살고 싶다는 것이다.

"설령 제 여성관이 틀렸더라도 제 마음에 들어야 해요. 평생 저와 함께 살 사람이니까요" 서씨는 나이와 주변 사람들의 아우성에 밀려 도망치듯 감행한 결혼은 실패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믿는다. 그는 결혼은 도망자들이 숨을 만한 안전한 도피처가 아님을 아는 사람 같았다.

"100점짜리 여자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100점이 안되니까요" 서씨가 찾는 배필감은 우리 사회가 제시한 정형화된 시험에서 '100점'을 받은 여성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임의대로 출제한 문제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여성을 원했다. 그래야 자신과 한평생 견디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서씨는 올해 초 68만8천원의 거금을 들여 한 결혼 정보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텔레비전의 짝짓기 프로그램에 나가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그만두었다. 한 100명쯤 앞에 놓고 본다면 몰라도 달랑 4명을 앉혀 놓고 고르는 일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이유였다.

205번 맞선을 본 남자 서규찬씨. 그는 한국의 처녀·총각들에게 '불어나는 나이와 날로 거세지는 주변의 아우성에 굴복하지 말자'고 선동한다. 좀 어렵게 만나더라도 일단 결혼하면 한평생 헤어지지 말고 살자는 말이었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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