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논란-파업권 제한…노·정 첨예한 대립

노동계와 정부가 '파업권'보장을 둘러싸고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의 연대파업으로 사상초유의 항공대란 등 국가적 혼란이 야기됐던 만큼 노동계의 이른바 '무분별한 파업'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재정비해야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

하지만 노동계는 '파업권'을 가로막는 현행법의 문제점을 지목, 이의 부당성을 알리는 것은 물론 정부의 파업권 제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정면대응할 태세다.

▨필수공익사업장 늘어날까?

오장섭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와 아시아나 항공노조의 파업과 관련, "현재 공익사업으로 분류된 항공사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업에 따른 국민불편이 큰 사업장에 대해 노조의 파업권을 추가로 제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명분이다.

현행 노조법은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하거나 국민경제를 현저히 저해하고 그 업무의 대체가 용이하지 않은 사업을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철도(도시철도 포함)·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 및 석유공급사업·병원사업·통신사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노조법상의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되면 조정이 실패할 경우, 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직권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더욱이 중재기간중에는 파업을 할 수 없으며 중재위원회의 중재재정은 반드시 따라야하기 때문에 노조의 쟁의행위는 사실상 불법이 된다. 파업권이 봉쇄되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지난 12일부터 전개한 총력투쟁과정에서 파업에 참여했거나 참여할 예정이었던 대다수 종합병원들이 직권중재에 회부됐었고 병원측은 이를 이용, 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는 직권중재 자체가 파업권을 박탈하는 악법이라고 규정짓고 이에 대한 거부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필수공익사업장이 더 늘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려운 점이 많다. 노동계의 반발도 있지만 정부가 내세울 명분이 약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는 노동계의 반발을 받아들여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돼있던 은행사업(한국은행 제외)과 특별시·광역시 시내버스 운송사업올 올해부터 필수공익사업 대상에서 제외했다. 직권중재의 폭을 좁힌 것이다.

정부가 불과 1년새 과거 방침을 바꿔 직권중재의 폭을 다시 넓히는데 있어서 부담으로 작용하는 대목이다.

▨행정지도시 파업은 불법?

공안당국은 민조노총의 연대파업을 두고 '불법파업에 엄정대처한다'는 말을 되풀이해왔다. 노동위원회가 행정지도를 내린 뒤의 쟁의행위에 대해 불법파업이라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행정지도가 내려진 사업장이 파업에 들어간 경우, 반드시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반론이다. 조정신청 후 열흘이 지나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조정절차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조정결과에 관계없이 합법적 파업이란 것이다.지난 98년 현대자동차서비스노조의 파업과 관련, 청주지방법원은 "쟁의행위의 목적, 절차 등이 정당했다면 행정지도시 쟁의행위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대법원 최종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노동계는 행정지도시 파업의 불법여부에 대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행정지도의 남발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노동계는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조정신청에 대해 2차례에 걸쳐 행정지도가 내려왔고 11차례나 교섭을 진행한 코오롱노조에 대해 '더 교섭하라'는 행정지도가 내려진 것은 행정지도 남발을 통한 노동탄압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동계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2월 '평화적 해결을 위해 조정신청시 행정지도를 최소화하라'는 지침을 내렸음에도 불구, 행정지도 남발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행정지도가 많아지는 이유는 결국,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 파업권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노동계의 주장과는 달리, 법대로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정부, 재계, 노동계의 움직임

정부는 일단 이번 파업사태를 계기로 다양한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늘길이 멈춰서는 등 엄청난 혼란이 실재상황으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선 항공사가 첫번째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 노조파업이 벌어질 때까지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비난이 봇물을 이뤘기에 어떤 형태로든 항공사 노조파업을 '저지할' 수단을 찾을 예정인 것. 항공사를 필수 공익사업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건교부 장관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재계도 필수공익사업의 확대를 바라고 있다. 영업피해뿐만 아니라 국가신인도 추락까지 가져올지 모르는 일부 사업장에 대해서는 강한 파업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노동계는 '노사 자율타결'을 고수하고 있다. 규제위주의 노동정책은 결국 극한대립만을 낳을 뿐이라는 경고도 내놓고 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직권중재 등 노동기본권을 저해하는 어떠한 악법도 철폐되어야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입장"이라며 "정부가 파업을 규제하려는 시도를 남발하면 사용자들이 이를 악용하게 되며 결국 노동계도 극한 투쟁으로 맞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