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는 '이상'...현실 적용은 '무리'
전국의 전교조 교사들이 7차 교육과정 시행을 거부하고 나섰다. 서울.전북.경기.대전.부산에 이어 경북.대구지부 소속 고교 교사들도 지난 11일과 13일 각각 거부를 선언했다.
7차 교육과정은 이미 작년부터 부분적으로 도입돼, 현재 초교 1, 2, 3, 4학년이 적용받고 있고 중학교에선 올해 입학한 1학년생도 마찬가지. 고교에선 내년 입학생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하지만 초.중학교에서는 반발이 집단화되지 않았다. 지금 문제가 된 것은 내년 도입을 앞두고 고교 교사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고교 교사들은 실무 준비 거부에 농성까지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교육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교육부도 "현지 여건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적용하겠다"고 양보했으나, 전체적 구도를 수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7차 교육과정의 취지=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교육 제도를 바꿔 나가면서 각각에 회차 번호를 매긴다. 8차 과정도 도입키 위해 머잖아 연구에 착수할 예정.
7차의 기본 구도는, 초교 1년부터 고 1년까지 10년간을 '국민 공통 기본 교육 기간'으로 설정해 국가에서 관할하되, 고2, 3년 때는 소비자(학생) 선택을 중심으로 지역별 혹은 학교별로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토록 하자는 것.
국민 공통 기본 교육이란 국민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지식.능력.태도를 가르치자는 것. 의무 교육도 이에 맞춰 10년까지 늘리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 이후의 선택 중심 교육은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능력.소질.진로 등에 수업을 맞춤으로써 쓸모도 없는 교육은 아예 말자는 것이다.
국가에서 모든 교육과정을 만들고 그에 따라 교과서대로 가르치던 이전의 중앙집권형 교육과정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변화인 셈이다.
◇무엇이 쟁점인가=7차 교육과정의 실행 핵심은 수준별 교육 및 학생의 선택권 확대, 재량활동 강화 등 3가지이다.
교육부와 전교조는 여기서부터 충돌한다. 교육부는 수준별 교육을 이상적인 '개별화 교육'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개별 학생의 수준에 맞게 목표를 세우고 내용과 방법을 달리 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
반면 전교조는 우열반 편성으로 교육 불평등을 가중시켜 학교를 더욱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단언한다. 실험 학교 운영에서도 학업 성취도 향상에 별 도움이 못되고 초교 1, 2년생들 경우 사교육비가 오히려 15%나 상승했다는 반증도 제시한다.
선택형 과정(고2, 3년)에 대한 생각도 영 다르다. 교육부는 소질.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소비자 중심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이상을 강조한다. 반면 전교조는 "취지는 좋으나 여건이 안된다"고 비판한다. 교원 숫자, 시설 등이 턱없는 상황에서는 도입해 봐야 혼란만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 제대로 하려면 한 학년이 150학급 6천명은 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교육부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듯 하다.
◇우려되는 상황=7차 교육과정이 계획대로 시행되면 상당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초교 1~4년 및 중 1년에서도 이미 형식에 그치고 있다. 초교 교사들은 "말이 수준별 수업이지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학생 각자에 맞게 수업하려면 진행이 불가능해 그냥 넘어가기 일쑤라고 했다.
특히 2003년이 되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전망이다. 그때는 고 2년에도 7차 과정이 적용돼 '선택 과정'이 집행되기 때문. 더 이상 인문계.실업계, 문과.이과 등 구분이 없어지고 선택한 교과에 맞춰 외국어, 물리학, 국어, 취업 등 다양한 과정을 밟아 나가게 되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교로 하여금 당초엔 30명 이상의 학생이 희망하는 과정을 개설토록 했었다. 그러다 고교별로는 그런 전면적 선택 설정이 어렵다고 판단, "인접한 7, 8개 고교를 묶은 뒤 학교별로 차별적인 2, 3개 과정을 운영하고, 학생들은 원하는 과정이 개설된 고교에 지원토록 하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현재의 학생들 성향이라면 외국어.공학 분야 과정엔 지원이 넘치는 반면,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 등 분야는 외면될 가능성이 극히 높다. 그렇게 되면 인기 분야를 개설한 학교만 선택이 집중돼 명문고가 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원하는 고교.과정에 가기 위해 입시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실업 과정 회피로 인한 실업계고 몰락도 예상되는 또다른 문제. 지금도 교사가 부족해 한 교사가 여러 과목을 복수로 가르쳐야 하는 농어촌 학교가 다양한 선택 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다.
◇시행의 전제 조건=교육부는 취지에 맞춰 노력해 가면 큰 혼란 없이도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설은 확충해 나가면 되고, 선택 과정도 지금보다 겨우 19개가 늘어날 뿐이므로 시행해 가면서 개선해도 충분하다는 것.
지금까지 공부 못하고 특기 없다는 책임을 학생에게만 떠넘기던 태도에서 벗어나, 국가.학교.교사가 학생들을 일정 수준까지 도달시키고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는 쪽으로의 자세 변화가 더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전교조는 "본말이 전도됐다"고 비난한다. 턱없이 모자라는 시설에서는 결과가 뻔하다는 것. 상치 교사, 순회 교사, 기간제 교사 등을 더 늘어나게 만들어 교단 안정성이 깨어지고 교육 질도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꼭 하려면 학급당 학생 수 감축, GNP 6% 규모의 교육재정 확보, 교원 처우 개선, 업무 경감 등을 해 놓고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결책은 없나=이대로라면 교육부와 전교조 갈등으로 7차 과정 고교 도입은 시작부터 파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떠안게 될 상황. 소비자(학생)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결국은 또다시 소비자에게 피해만 입히는 결과가 불가피한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원점에서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지금까지 교육과정은 현장 검증 없이 이론적으로만 설계된 뒤 시행돼 왔다는 지적도 있다. 7차 과정 역시 공개적인 논의가 부족했고 시범 운영도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점을 받아 들인다면, 지금이라도 전교조가 제시하는 '범국민 교육과정 위원회' 같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현장을 반영하는 기구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7차 과정에 들어 간 초.중학교 교사들도 "논란이 심한 선택 과정 도입은 미루거나 축소하고 이미 시행되고 있는 초.중학교 문제점들을 세밀히 파악해 보완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했다.
이제 7차 교육과정은 종전처럼 밀어 붙이기식으로 강행되느냐, 교사들의 저항에 부딪혀 수정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교육부와 전교조에게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그 소비자의 보호자인 학부모들이 나설 차례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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