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제도시 대구-1부-현실과 가능성

(3)새로운 패러다임

국제도시 대구?

최근들어 대구시의 숨가쁜 자랑(?)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민들은 '대구'와 '국제도시' 사이에서 쉬 공통분모를 찾아내지 못한다. "도대체 대구에 내세울만한 게 있기는 한가?"라고 되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구에는 정말 내세울만한 것이 없는 걸까.대구의 물적 기반은 세계에 내놓아도 별 손색이 없다는 것이 대구를 찾는 관광객·기업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대구에서 외국인 관광객과 기업가들을 보기란쉽지 않다.

아직 대구만의 독특한 색깔이 만들어지지 못한 탓일까. 혹은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의 가치에 무심하여 소중한 자산들을 홀대하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자타가 인정하듯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 '배타성이 강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뿌리깊은 유풍(儒風)과 수많은 인재배출, 오랜 정권 창출지로서의자부심 등이 이러한 기질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많은 대구사람들은 이러한 보수성·배타성을 부정적으로만 여기고 부끄러워한다.하지만 한가지 짚어볼 것이 있다.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도 보기 힘든 보수성·배타적 기질이 대구의 지역색 중 하나라면 이를 오히려 효과적으로 역이용하는방법은 없을까. 몇년전, 지역정서의 상징처럼 인식된 신조어 'TK'가 신문과 방송을 온통 뒤덮었을 때 호기심많은 일부 외국인들이 대구지역을 일부러 찾아왔던예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페인 지중해 연안의 카탈루냐 지방은 지역정서가 강하기로 유명한 곳. 평소에도 고유언어인 카탈루냐어를 고집하는 이 지역은 심지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때도 스페인어 아닌 카탈루냐어를 공식어로 내세울 만큼 배타적이다. 그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등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건축물들과 독특한 지역정서가 어우러진 주도(州都)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인 관광·문화도시로 엄청난 수의 지구촌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배타적인 지역색채도 외국인들에겐 호기심의 대상, 하나의 관광상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구를 세계 속의 도시로 성장케 하기 위해서는 마이너스적 요소도 효과적으로 역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버렸던 '가장 향토적인 것'을 발굴하고 보존하면서 외국인들에게 그 가치와 의미를전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에 왜 볼 것이 없다는건가?"라고 되묻는 미국인 관광객 데니스(31)씨의 질문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허를 찌른다. 대구를 처음 찾은 데니스씨는불로동 고분군, 동화사 통일대불, 국채보상공원, 대구박물관. 경상감영공원, 갓바위 등을 훌륭한 볼거리로 꼽았다. 그는 대구사람들이 이런 멋진 볼거리들에대해 좀처럼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가장 한국적인 것, 오래된 것을 보고 싶어하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대식 빌딩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고 데니스씨는 잘라 말했다.데니스씨는 또한 관광객의 입장에서 볼때 대구에 관한 관광가이드북과 함께 인터넷 홈페이지에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달아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필요가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대구시 수성구 매호동 시지 우방하이츠 11세대 주민들(대표 김학환)이 월드컵과 국제대회 민박을 대비해 자체적으로 준비한 홈스테이프로그램은 새로운 가능성을 짚어보게 한다. 이들은 외국인을 위한 숙식, 교통운송 및 인근 농경민속촌, 박물관, 향교 등 다양한 관람과 민속놀이 등의홈스테이 프로그램을 마련, 단순한 관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구를 찾는 외국인들이 우리의 전통풍습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오래전 중국과 일본 상인들의 발길이 끊어졌던 약령시에 다시 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오래된 대구의 것'이 얼마나 소중한자산인가를 보여준다.

대구가 국제사회에 내놓을 만한 볼거리는 유형의 문화재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라트포드에서 창단한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극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를 돌며 셰익스피어 알리기에 분주하다. 일본 배경의 오페라 '나비부인'과 중국 배경의 '투란도트'도 이미 세계적 문화상품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지금 세계 각국은 자국출신의 작가가 썼던 낡은 안경, 작가가 앉았던 오래된 테이블 등 초라한 유품을 늘어놓고 그들 스스로 예술의 본고장임을 자임하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고갱'이며 일본 화가들의 시샘에 찬 시선을 받았던 대구출신 화가 이인성의 기념비가 대구 봉산 문화거리에 있음을 아는 시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김동인과 더불어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인 현진건의 기념문학관은 왜 대구에 없는가. '봄은 고양이로다' '하일소경(夏日小景)' 등으로알려진 국민시인 이장희의 흔적을 우리는 대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이정인 수석연구원은 "무엇이 대구의 진짜 재산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는 왜 향토사를 가르치지 않는가? 가르칠 것이 없다는 말인가?' 하고 묻는다.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의 거리는 해가 갈수록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수많은 문인들의 체취가 밴 대구 향촌동 골목길은 이제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조선조때부터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던 달서천 맑은 물의 미나리꽝은 쓰레기와 폐수로 메워져버렸다.

대구는 한국의 어느 도시보다 독특한 문화예술의 향기가 녹아있는 '문화예술의 보고(寶庫)'이지만 막상 시민들은 그것의 소중한 가치를알지 못하고 있다. 대구를 국제도시로 성장케 하려면, 세계인들을 이곳으로 부르려면, '대구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하기 전에 이 도시곳곳에 배어있는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후각을 되살리는 노력부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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