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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다낭 거쳐 프놈펜으로… 기자가 접촉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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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직접 유인책과 통화… 경유지 지정부터 암호화폐 결제까지 치밀하게 짜인 출국 설계
출국 전 사비 요구·입국 후 여권 압수 사례도… "보피 사무실" 자인하며 조직적 가담 유도
한국과 현지 단속에도 여전한 활동… 텔레그램 통해 은밀히 이어지는 조직 유입

"인천은 경찰 너무 많아요. 김해공항에서 다낭 찍고 프놈펜으로 넘어오세요. 숙소랑 식사는 다 있어요."

생경한 말투로 시작된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언뜻 들으면 해외 취업 알선 중개인 같았다. 하지만 그가 건넨 마지막 한마디는 결코 가벼운 농담이 아니었다.

"그냥 보이스피싱 TM이에요. 본인이 경찰이라고 하면 돼요."

기자는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에 현혹돼 캄보디아로 떠났던 한 청년의 제보를 토대로, 텔레그램을 통해 직접 '채용 담당자'를 가장한 모집책과 접촉했다.

입사 절차는 간단했다. 통화 두 번, 메시지 몇 줄이면 됐다. 그다음은 '출국'이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시작된 이들의 유인 시도는 고도로 체계적이었다.

'한 달 수입 1000만 원 보장', '숙식 제공', '여권만 있으면 가능'이라는 문구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청년층을 겨냥한 듯 보였다. 기자가 직접 접근하자, 이들은 빠르게 통화로 전환하며 본격적인 '면접'에 돌입했다.

"뭐든 괜찮아요? 도박, 토토, 보이스피싱?"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기자가 "돈이 급하다"고 하자 곧장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초보도 괜찮다", "하루 8시간만 일해도 700만~1000만 원 벌 수 있다"며, 자신이 마치 인력사무소 직원인 양 포장했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범죄 가담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일수록 조직 내에서 '잘 훈련된' 일꾼으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신입도 5000달러는 기본으로 번다", "한 달에 2만~3만 불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범죄 수법에 대한 설명은 상세했다.

"등기 우편 보냈다고 하세요. 경찰이라고 하세요. 못 받았다고 하면 다시 보낸다고 하고, 계좌 확인하라고 유도하는 거예요."

말인즉, 자신이 경찰 혹은 검찰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는 이른바 '1선 TM(텔레마케터)'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사용해온 대표적인 수법이다.

조직원은 주로 수사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해 개인 정보를 빼낸 뒤, 이를 토대로 2선 조직원이 자금을 인출하거나 송금받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자가 "이거 보이스피싱 아니냐"고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맞아요. 보피 사무실입니다. 다 그 일이에요."

범죄인 줄 알면서도 거리낌 없는 태도였다.

오히려 "열심히 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 "한국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강조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평가도 받았다. "걱정 마세요. 와서 훈련하면 됩니다. 대본 있고, 트레이닝도 시켜줘요."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은 신입 조직원에게 목소리 훈련, 대사 암기, 전화 응대 요령 등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출국 루트도 세세하게 안내했다.

"요즘 인천은 경찰이 다 깔렸어요. 김해에서 다낭 찍고 넘어오세요. 프놈펜으로 오면 돼요."

다낭은 베트남 중부 도시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이동하기에 적절한 중간 경유지다.

그는 "우리가 티켓도 끊어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내 "30만~50만 원 중에 10만 원은 본인이 먼저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믿고 끊어준다"며 선입금을 유도했다.

실제 피해 사례 중에는 이 과정에서 돈만 받고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엔 '해외 일자리'라는 말로 안심시킨 뒤, 입금이 확인되면 곧장 연락을 끊는 식이다.

결제 수단도 이미 우회로를 마련해뒀다.

"한국 계좌는 절대 안 돼요. 코인으로만 주세요. 바이낸스 쓰시죠?"

그는 암호화폐 지갑 생성법을 설명하며 "10만 원만 충전해 두면 나머지는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구조는 자금 추적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피해 발생 시 회복 또한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기존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는 코인 기반 거래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 중 하나다.

또한 그는 "인터넷에 검색하지 마세요. 다 사기꾼이에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외부 정보 차단을 통해 조직 외부와의 접촉을 막으려는 의도로 보였다.

접촉이 이뤄진 텔레그램 채널에는 매일같이 "검증된 사무실", "안전한 근무지", "기본 숙소·식사 제공"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방에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구직자가 상시 대기하고 있는 듯 보였고, 일부는 실시간으로 모집책과 연결되고 있었다.

채팅방에 있던 다른 모집책을 언급하자 그는 "그 방도 사기꾼 천지다. 우리가 진짜다"라며 경쟁 구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수의 보이스피싱 조직이 동시에 한국인을 상대로 인력 모집에 나서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조직원 모집의 최종 목표는 하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 무직자, 실직자 등을 포착해 해외로 이끌고, 이후 보이스피싱 범행에 투입하는 것이다. 출국 직후 여권을 압수하거나, 조직 숙소에 감금하는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년 이후 동남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보이스피싱 조직원 100여 명 이상이 국내로 송환됐다.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로 기소되기도 했다. 고수익을 좇다 범죄에 발을 들이고, 이후 조직의 지시로 전화 사기, 금융 사기 등에 가담한 이들이다.

이번 취재에서 기자는 끝내 캄보디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았다.

그러나 통화 몇 번, 메시지 몇 줄이면 누구나 출국 일정을 안내받을 수 있었다. 입국 방법, 숙소 위치, 역할 분담까지 계획은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이들은 정식 취업 알선업체처럼 행동했지만, 결국 범죄조직의 일원이었다. 범죄임을 인지하고도 말한다. "돈 많이 벌 수 있다"고.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비행기 티켓'을 받아들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구금 사태가 발생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15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캄보디아행 항공편 탑승구에서 인천국제공항 경찰단 대테러기동대 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경찰은 캄보디아행 항공편에 탑승하는 한국인 승객을 대상으로 위험방지를 위한 질의 등 안전활동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납치·구금 사태가 발생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15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캄보디아행 항공편 탑승구에서 인천국제공항 경찰단 대테러기동대 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다. 경찰은 캄보디아행 항공편에 탑승하는 한국인 승객을 대상으로 위험방지를 위한 질의 등 안전활동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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