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햄릿이 그의 삼촌이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자 비통한 나머지 이 같이 독백했다. 아버지의 뜨거웠던 사랑을 쉽게 저버린 어머니의 배신과 연약함을 질타하면서 눈물로 토한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여자는 햄릿의 독백처럼 연약한 존재이기만 했던가? 서양의 경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자 앞에서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조선조 유교사회의 요조숙녀들마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이생규장전'('금오신화')의 주인공 '최랑'은 자신들의 은밀한 애정 행각이 탄로날까 두려워 하는 '이생'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저는 비록 여자지만 마음이 태연하거늘 하물며 대장부의 의기로 이런 말을 합니까? 이 뒤 만일 규중의 비밀이 누설돼 부모께 꾸중을 듣는다 하더라도 제가 맡으려 합니다' 한 예에 지나지 않지만 이 경우만 보더라도 여성이 남성보다 내면적으로 강인하고 적극적이지 않았던가.
▲최근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약성(弱性)이라는 주장까지 나와 화제다. 미국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가 최신호에서 학자들에 의해 이 같은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D나 F학점을 받는 학생의 70%, 학습장애아의 3분의 2, 고교 중퇴나 정서불안의 80%가 남학생이며, 훨씬 더 높은 대학 진학률과 우수한 학생, 강한 자기 주장, 높은 야망 등도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미국에 못지 않게 각 분야에 걸쳐 여성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이런 현상에는 아랑곳없이 내면 깊숙이 배어 있는 남성들의 우월의식, 성차별의식, 이기주의의 벽이 여전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남녀 평등이나 성차별을 막기 위한 법적 제도의 마련도 중요하겠지만 이에 앞서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편견과 우월감을 양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통합.조화.상생의 시대로 예견되는 21세기는 대립.분열.갈등의 시대였던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창의성과 유연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맞아 마음속의 편견과 차별의식을 걷어내고 남녀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의 꽃을 피울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한 이 새로운 시대의 발전 속도에 따라잡지 못하고 낙오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한 총리 탄핵 기각에 "국민이 납득할지 모르겠다"
아이유, 대구계산성당·칠곡가실성당 2곳서 결혼?…TK 천주교 명소 알리는 '폭싹 속았수다'
전한길 "李대표 사법리스크 때문에 대한민국 법치·공정 무너져"
이재명, 유발 하라리에 'K엔비디아' 언급…"공산주의자라 공격 받아"
[속보] 헌재, 한덕수 총리 탄핵소추 '기각'…직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