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친구 면회

공직에서 물러나 고향의 집으로 돌아와 쉬니 마음이 한가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친구 실아(失我)가 생각났다. 하늘나라 서울 백옥경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이라서 내려와 있는 손자와 손녀 아이들에게 오늘은 친구를 만나보고 오겠다면서 미리내 마을 오막살이 집밖으로 나섰다. 오작교를 건너 내려가서 적멸해(寂滅海) 바다 가운데 유배지 지구섬의 형무소 면회실에서 죄수복 차림의 친구를 만났다.

지금은 하늘나라의 봄 대공산(大空山)에는 별꽃이 피어 바람에 나부낀다. 화무십일홍이란 말과 같이 수천억년을 하루같이 피어 있는 저 별꽃들이 십일이내에 다 떨어져가면 그 자리에는 녹음이 점점 짙어지리라. 이러한 천국에서 한 백년 산다면 인간세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갈 것인가.

이야기 도중에 친구는 지난 번에 내가 보내준 '낙화유수' 시집을 잘 읽었다고 하였다. 영원무궁한 하늘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비하면 지상의 백년인생이야 덧없는 하루살이에도 못 미친다는 내용이다.

나는 실아에게 이 지구섬의 형무소 육체의 감옥, 영혼의 감방에 갇혀서 종신형 징역을 살고 있지마는 얼마 있지 않아서 곧 출감될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하였다. 다른 일 같으면 몰라도 인류의 조상이 저지른 원죄로 인한 것이니 난들 어찌 하랴.

출옥하는 대로 곧 선아와 항아 견우 직녀 진아 등과 함께 뛰놀던 미리내 마을 집으로 나를 찾아와 달라고 하였더니 친구는 백옥경 집이 아니고 어찌하여 미리내 고향 집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백옥경 서울에 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마는 최근에 공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것은 몰랐다.

친구와 작별하고 면회실을 나왔다. 적멸해 바다 건너 대공산 골짜기에 흘러내리는 맑은 물위 오작교를 지나 언덕위의 오막살이 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에서 놀고 있던 손자와 손녀 아이들이 나를 반겨 맞았다.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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